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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빵 Jul 15. 2021

[리뷰] 영화 : 달마야 놀자

매끄러운 돌멩이 되어

너 나랑 맞짱 한 번 뜨자

비에 젖을까, 바람에 날아갈까, 불에 타버릴까 조심하던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정보를 찾지 않아도, 큰일이 나지 않는 한 사라질 일 없는 검색창에 몇 글자 치기만 하면 정보가 뚝딱 나온다. 사람보다 정보가 많은 세상이 오니 사람이 '부디 정보 좀 알려주십시오'하지 않아도 '제발 제 정보 좀 봐주십시오'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굳이 보기 싫은 것들은 외면하고 살아도 충분히 바쁘다. 하지만 이 편리한 세상이 나를 또 다른 우물 안의 개구리로 만드는 건 아닐까.




너희들 눈에는 그게 부처님 귀로 보이더냐?




갈까마귀와 책상의 공통점을 묻던 이상한 나라의 모자 장수를 안다면 한 번쯤 그 답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럼 이 조폭과 스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모자 장수의 질문보다는 답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영화는 목숨을 위협받아 절로 도망 온 조폭 한 무리가 스님들을 만나며 시작된다. 함께 있는 모습부터 영 상상이 되지 않는 두 집단의 한 지붕 살이는 역시나 엉망진창이다.


목탁을 두드리며 마음을 다스리고 묵언 수행으로 마음을 돌아보는 스님들의 하루는 매번 스스에 대한 공부다. 조폭들에게 하루는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적들로부터 지키면서 나의 동료와 의리를 쌓는 버티기 싸움이다. 덕분에 늘 마지막처럼 하루를 즐기는 조폭들의 시끄러움이 스님들의 조용함에 시도 때도 없이 침범한다.




독에 맑은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구나



결국 스님들과 조폭들은 절에 남느냐 떠나냐를 걸고 대결을 펼친다. 하지만 서로 굽힐 줄 모르는 통에 대결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이번엔 주지 스님이 문제를 준다. 콩쥐팥쥐의 콩쥐처럼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라는 주지 스님에 양쪽 다 별의별 답변을 내놓기 시작한다. 여기서 희한한 점은 결국 답을 찾아낸 건 조폭들이라는 점이다. 몇 년에 걸쳐 매일매일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는 스님들이 아니라 겨우 하루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살아가던 조폭들 말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면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 수양이다. 묵언 수행이니, 삼천 배니, 묵언 발우공양이니 수양하기에 좋아 보이는 것들을 따라 해도 결국 모든 수양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정답이 없다. 그런데 영화 속 스님들은 자신이 조폭과 달리 법도와 이치를 배운 사람이라는 선을 긋고 미워한다. 자신의 수양에 심취해 마음을 닫아 버리면 새로운 깨달음을 얻지 못함에도 말이다. 주지 스님은 그걸 깨닫게 하고자 서로 다른 두 바윗덩어리를 같이 굴려 보낸 것이다. 서로를 깎아가며 다듬어지면 다듬어지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것 또한 또 다른 깨달음이 되리라면서 개입하지 않는다.




밑 빠진 너희들을 내 마음속에 던졌을 뿐이야




https://tv.naver.com/v/5685041

인생에 불필요한 사람을 많이 둘 필요는 없다.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을 이의 말에 흔들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인생은 온전히 혼자서 사는 게 아니다. 세상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환경에서 자라온 다양한 이들이 존재한다. 언제라도 누구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에서 나에게 귀찮고 불편한 일은 일절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로 세상이 채워진다면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될 것이다. 서로 모난 바위들이 양보도 없이 날을 세우고 굴러갈 줄을 모를 것이다. 나도 불편한 관계를 참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굳이 날을 세울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까지 가시를 세우며 귀를 닫는 건 싫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다면 답답하다 여길 테다.


모두는 각자로 아름답다. 단, 독창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은 다르다. 매너라고 하는 기본의 마음가짐. 나만이 맞다는 생각은 흔히 꼰대로 가는 길의 시작이다. 사전적으로 꼰대는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한정된 말이라고 하지만 최근에 주변을 둘러보면 10대 20대 꼰대도 꽤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나이가 많은 꼰대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3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소개인 경우가 자주 있다. 이토록 모든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면 내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겠지 라는 겁부터 나는 이 꼰대와 꼰대 씨앗들은 자신의 불편함을 생각하느라 상대방이 병들어 가는 것을 무시한다. 자신의 부족함은 감싸고 남의 부족함은 꼴도 보기 싫어한다. 내가 하는 존중과 내가 받는 존중. 둘의 중심을 잘 잡는다는 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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