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흔 Feb 20. 2024

13  끝말잇기

끝말잇기


장명흔


시집은 시와 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집은 시가 사는 집이다.

시의 집을 지은 자는 시인

시인은 모국어로 말의 사원을 짓는 사람.

사원은 시인의 다른 모습이다.

다른 모습은 자아自我다

자아는 맑은 거울이다

거울은 빛을 반사해 모든 사물을 반영한다.

자신을 보인다. 바닥을 보여주는 물이다

물은 석자만 흘러도 스스로를 맑힌다

맑고 차가워서 예민하다

예민한 시인은 세상에서 제일 상처받기 쉬운 사람

상처로 세상 만물을 낯설게 보는 사람

낯설어 상처를 보듬고 산다.

상처의 나이테가 시집이

시집을 읽고 또 읽는 까닭은

상처가 키운 옹이의 집을 들어가고 싶어

시집엔 옹이가 산다.




어느 한 시절은 시에 꽂혀 살았다. 아침마다 들어오는 조간신문의 시를 오려 스크랩하고 바닥을 드러내는 통장 잔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시집 저 시집을 사들이고 잠 안 오는 밤이면 시집을 붙들고 필사를 했다. 이렇게 시, 시, 시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여전히 나는 시의 집 문 앞에서 서성거리고만 있다.

시랄 것도 없는 이 글도 어느 한 시절에 했던 푸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2 개구멍에서 대문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