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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Dec 13. 2023

12  개구멍에서 대문으로

개구멍에서 대문으로

장명흔


개 구멍으로 몰래 들어와

밥을 먹다가도 나만 보면

뒤도 안 보고 달아나곤 하던 녀석이

며칠 내려와 있으니 조금 편해 지는지

밥 먹다 슬쩍  돌아본


마당을 슬렁슬렁 돌아다니며

마당 일하는 나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앉아서 게으른 하품을 하다

마실 가듯 대문으로 나갔다가 돌아오곤 한다


아침에 눈 떠 밖에 나오면

녀석의 밥그릇에로 눈이 가니

아침 상 차리듯

밥그릇을 채우고

물그릇 나란히  둔다


빈 집에 다문다문 피어난 꽃처럼

들명날명 찾아와 주는 것이 마음 가

집에 와 있으면 녀석의 행방이 궁금해진다

이제야 조금씩 나로부터 경계를 푸는 것 같아

냥이야 하고 몇 걸음 다가가면

아직은 아니라는 듯

슬렁슬렁 등을 보이며 나가는 녀석

어쩌면 녀석도 드나들면서

내가 지 집사로 적격한 지 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 며칠 개구멍에서 대문으로 드나들지만

 아직도 나와 녀석 사이에는 허물어 뜨릴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내일은 서울 올라가는 날

아침에 나오니 서리가 하얗다

밥그릇 옆에

빈 박스 하나 가져다 놓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요하나 넣어 둔다.




시골집에  길냥이들이 드나든다. 가끔씩 갈 때마다 사료를 고봉으로 담아두고 온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밥을 챙겨서 냥이들이 온 게 아니라 길냥이들이 와 줘서 그때부터  밥을 챙겼다.

그렇게  찾아와 준 냥이 중 애기 고양이 봄이가 맨 처음 왔다 갔고 지금도 세 마리가 너나들이로 왔다 갔다 한다. 그때 애기였던 봄이는 지금쯤 성묘로 자라 있을 것이다. 썰렁한 빈 집에 내려갈 적마다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는 녀석들이 왜 그리 반가운지. 아마 녀석들도 나를 보면 그렇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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