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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Dec 06. 2023

11  박스의 소유권

박스의 소유권

장명흔


동네 마트옆 주차장 빈 박스 수북한 곳에서

늙수그레한 노인과  쉰쯤 돼 보이는 여자가

입다툼을 하고 있다

 

박스가 필요하면 물어보고 가져가야지...

노인은 뒷 말 흐린 채 땅 보고 군두름하고

 

마트 단골이 빈 박스 가져가는데

무슨 허락이 필요하냐며 여자는

노인 향해 눈 치켜뜨고 말한다

 

노인의 목소리는 땅으로 졸아들고

여자의 쇤소리는 하늘로 울려 퍼지고

석양 녘 어스름 붉을 대로 붉은데

 

마트 사장 지나다

전후사정 듣고는

먼산 보듯 한 마디 한다

 

박스는 마트 청소하고 가져가니

저 노인의 하루치의 노임이라고

 

여자는 눈 위아래로 흘기며 노인 한번 보고

사장 한번 쳐다보고 어스름 골목으로 사라지고

 

빈 박스처럼 구겨져 있던 노인

허리 펴고 일어나 편들어 줘 고맙다는 듯

눈인사하자

사장은 말없이 마트 안으로 들어가고

노인은  리어카 끌고

맞은편 고물상 쪽으로 가는데

어둠이 리어카 꽁무니에 바짝 따라붙는다.



며칠 전 친구가 장난처럼 던진 퀴즈다.

남에는 없는데 강북에는 많은 게 뭘까?

정답: 폐지 줍는 노인들

그럴 듯하다.

이른 아침 운동 가다 보면 수레 끌고 폐지 줍는 허리 구부정한 노인들을 자주 본다. 상가 앞이나 골목을 돌아다니며 폐지뿐 아니라 돈 될만한 캔이며 박스를 줍느라 쓰레기봉투를 뒤진다.


겨울 되니 그런 어르신들이 부쩍 더 는 것 같다. 그런  분들 중에는 건물주가 소일거리로 다닌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길 가다 수레에 실은 박스가 쏟아져 난감해하는 할머니를 도와 드린 적도 있고 건널목에서 수레를 끌어준 적도 있다.  

물론 주변엔 꼿꼿한 허리로 산책 다니는 분들도 많고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카페도 가고 복지관에 취미활동 다니는 어르신들도 있다.

옛말에 가난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서민 아파트가 많아서일까.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수레를 끌고 골목골목을 다니는 노인을 보면 고령화 시대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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