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명흔 Jul 08. 2023

10  이름은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다




이름은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다

 장명흔

     

저녁때

여고 때 친구라는 이한테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

나를 아는 그녀는

당황해하는 내게

보따리 풀 듯

기억을 풀어헤친다

 

야자 때 선생님 눈 속이고

극장에 숨어든 것

학교축제에서

나는 팥쥐 어멈

자기는 설설 기는 콩쥐였었다고

 

기억을 도와주려는 그녀가 고마워

잠시 기다려 달라 하고

마악 옛날로 들어서고 있었다

기억이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떠났다가

돌아오기까지는 아주 잠깐이었다

 

너, ㅇㅇ이, 맞지?


목소리나 생김새로 봐도

자기가 팥쥐어멈이라고

막무가내로

선생님 말을 잘라먹고 나서던  그 애

수화기 바짝 대고,

고약한 팥쥐어멈처럼   웃어젖히자

앳된 콩쥐가 수화기 속에서 웃는다


ㅇㅇ이라는 이름 속에 그녀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기억을 저장하는 장소다'

 

 



 시작메모: 잊고 지냈던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무심하게 살아온 시간만큼 나는 그녀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다. 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 중 한 명인 듯한데. 세월이 흘러 중후한 아줌마가 소녀적 친구를 떠올리며 나를 찾아 준 것이 가슴 설레고 고마운 일임에는 틀림없는데, 나는 정확히 그 친구가 누군지 기억해 내지 못하는 미안함이 컸다.

 

 내 기억을 돕느라 열심히 지나간 추억들을 들춰내는데도 도무지 그녀가 누군지 선뜻 말해주지 못했다. 미안해하다가 떠오르는 이름 하나, 마치 헝클어진 퍼즐조각의 아귀가 맞아떨어지듯 그녀가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양갈래머리에 친구들 간에 의리 있고 터프했던 친구 ㅇㅇ였다니,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름이 그녀의 모든 것을 내 앞으로 불러다 논 셈이다. 오래전에 쓴 신데  몇 군데를  손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