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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May 14. 2023

09   삼천포에서

삼천포에서

장명흔


봄이 아랫녘 포구에 먼저 와 있었다.

장례식장 앞 뜰엔

수령을 알 수 없는 버드나무가

아랫도리를 까고 앉아 햇빛을 쬐고 있고

 가지마다 눈이

금방이라도 토독 불거질 것 같은

오후 네 시의 포구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사내들 몇은 양지쪽에 모여 있고

사내 하나는 발정 난 개처럼 포구를 어슬렁거렸다

여자 셋은 바다를 배경으로 서서

슬렁슬렁 다가오는 사내에게

사진 좀 찍어 달라고 하자 사내는 묘한 웃음을 흘리며

이리 서라 저리 서라 하며 우릴 제 맘대로의 배경 안으로 가두려 했다.

사내는 카메라돌려주며  비릿하게 웃었고

우리는 추억이 될 배경 속에서 사내를 지울까 말까  잠시 망설였다.

배들은 폐선처럼 정박 돼

바다로 떠나지 못한 채

봄볕에 자울자울 졸며 허풍서니 바람에 농락당하고 있었다.

시간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채

팔짱 끼고 서서 구경꾼처럼 보고만 있었다.

바람은 짜고 비릿했다.

채반에 널린 박대와 조기는 오후 네시의  햇살아래서

 박제처럼 꾸덕꾸덕 말라가고

빨간 비닐 앞치마를 두른 생선집 여자는

깍짓동만 한 몸을 바다 쪽으로 틀고는

본 데 없이 욕지기처럼 가래침을 뱉었다.

오후 네시의  삼천포구는 나른했고

생의 세시 즈음을 살고 있는

 여자 셋은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오늘 떠난 한 생을 오래 기억했다.

삶은 누구에게나 밑밥 같은 시간을 던져주고

시도 때도 없이 시험에 들게  들볶을 테지만

우리는

아랫도리를 까고 오수를 즐기는 노거수(老居樹)처럼

시시로 악착을 내려놓고 살 자에 입을 맞췄다.

 

포구의 봄은 비릿하고 포근했으며 가는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밀어내지 않았다.






메모: 이 시는 지인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듣고 친구 셋이서  자동차로 장장  왕복 10시간 남짓 되는 거리를 달려 장례식에 참석했던 날의 기록이다. 그날 시간이 여의치 않았어도 수산 시장이며  삼천 포구를 돌아봤었다. 그러니까 이때가 8년 전인가, 오래전 일인데 이렇게 다시 꺼내 보니 시에 욕심이 가득하다. 삼천포?로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서  어지간히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 싶다. 그날의 기억들이 오롯해 추억에 젖어 다시 소리 내 읽어봤다.

눈에 선 표현은 입에서도 겉돌고 버석 버린다. 호흡이 가쁘고 끊기다 거칠어서  몇 군데를 다시 수정했다.

고치고 나니 읽기가  좀 나은 듯 하지만 여전히 시간 지나 들춰보면 또 떫고 선데가 불거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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