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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명흔 Feb 24. 2024

11  "방 한 칸이 열  칸이다."

"한 지붕, 한 이불 아래 식구들이 살갗을 맞대던 침실공간이 되었다가도, 때가 되면 겉보리 풀대죽 일망정 허기를 반찬 삼아 오순도순 식도락을 나누던 식당공간이 되었고, 나른한 가운데 못 이기는  늘어지게 낮잠이라도 자고 나면 곧 휴식 공간이었다. 그런가 하면 동네 사람이 여럿이 모여 입담을 늘어놓으면 마을 회관으로 바뀌었다가, 동동주에 육자배기 한 자락 인생살이 시름을 달래기 시작하면 이내 오락공간이 되곤 했다. 책을 펴 들고 동서고금의 식견과 지혜를 넓히려 한다면 그곳은 곧 독서공간이 되었고, 때로는 세 살 버릇 고치려 따끔한 매를 마다하지 않는 훈육공간이 되었다가 밤이 되면 구수한 옛날이야기로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 하는 무대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아낙은 빨랫감에 풀을 먹이고 다림질을 하거나 바느질로 해진 옷을 다듬는 가사공간으로 쓰였으며, 아랫목에 띄워 놓은 청국장을 살펴보고 윗목에는 콩나물에 물을 부어 그 크기와 맛을 가늠하는 부엌공간 으로도 쓰였으니, 어디 그뿐인가? 나만하더라도 우리 식구가 살던 방에서 태어났으니, 방은 요즘으로 치자면 산부인과 분만실이었다. 김억중 건축가의 <나는 문학에서 건축을 배웠다>중에서.




방에 대한 작가의 사유가 깊고 재미있다. 그의 건축은 문학 속에 비친 집에서 사람들의 삶을 찾아낸다. 방, 마루, 부엌, 이라는 공간에 깃든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고 보면 건축가는 멋진 건축을 짓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사는 집을 짓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건축가이며 작가인 그가  방 한 칸이 열 칸이 되는 얘기를 풀어 놓았다. 그의 말처럼 방은 이승에서 저승까지라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져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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