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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uren Jan 06. 2022

나의 이야기 기록

에잇, 될 대로 돼라.

고등학교 내내 멀미에 시달려가며

버스를 1시간이나 타고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 시간을 오롯이 학원에 바쳤다.

물론 나를 물심양면 지지해 주시는 아버지의 공도 엄청나게 크다.

학원이 나고 돌아갈 때는 항상 데리러 와주셨으니,

 헛되이 시간을 죽일 수만은 없었다.



정말 세월은 빠르다.

금방 입시생, 고3이 되었다.

모두들 바쁘다.

나는 바쁘지 않다.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냐.
미친, 이상한 내가 튀어나왔다.



첨에는 너무도 당연한 일인 듯 느껴졌는데,

지속하다 보니,

까만 연필심을 길고 뾰족하게 갈아 하얀 도화지 위에,

시커멓고 딱딱하게 표현해 내는 석고상이  왜 이리 거북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만져보면 매끄럽고 부드럽기까지 한데...

이해가 안 되고,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동양화 선생님은 나의 그림이 못 맞당하다.

투시 화법을 심하게 써, 공간을 넓다 못해 광활하다고 핀잔이다.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단다.

그림은 작가의 맘이 아닌가?

아직 작가가 아니래.

대학 가서 작가 하라고,

지금은 입시 미술, 교수님 맘에 들어할 만한 그림을 그리란다.


시건방이라고 온 학원에 소문이 나고 급기야 아버지가 상담하러 오시고,

내가 먼저 숙여야 하나?

고민이 많다.

저리 판에 박은 듯 그리려면 사진을 찍던지...

정답지를 주면서, 똑같이 그려내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그때도 지금도 한국에서는 합격률로 학원을 판가름하기에, 나로 인해 분위기가 어수선 해지는 걸 바라지 않아 자의 반 타의 반 학원을 옮기게 되었다.


수소문해서 대학생 선생님의 작은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숨통이 좀 트였다.

실력은 그저 그런 학생 선생님이었지만. 없는 것보단 나으므로...



난 당연히 물 먹었다.

1 지망, 2 지망, 몽땅 다 떨어졌다.

망연자실...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인가 보다.

엄청난 딸 바보 아버지는 날 안아주며

 "내년에 또 보면 되지. 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니만 괜찮으면 다 괞한타." 하셨고,

엄마는 " 우짜노, 우짜노..."


내 재수생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도 안다. 내가 결정했다.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나를, 나 스스로 꺾은 첫 번째 결정이었다.

대학 안 가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그때 내가 조금만 똑똑하게 굴었더라면,

그때 내가 조금만 더 간이 컸다면,

그때 내가  될 되로 돼라 못했는지....


지금도 못 한다.

에잇, 될 대로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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