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아이 등교 준비를 하지 않으니 느긋하게 여유를 누리고 싶었는데 남편이 아침을 먹고 가야겠다고 메뉴를 주문했다. 평소 아침을 먹지 않고 나가는 남편은 집에서는 입맛이 없는데 출근함과 동시에 갑자기 허기가 진다며 아침 기사식당을 이용했다. 매일 메뉴가 바뀌는 식단도 기대되고 얼큰하게 해장되는 국물도 있으니 음식 간이 약한 집밥보단 식당 음식을 더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아침을 먹겠다며 아이와 함께 자는 방문을 열어 나를 재촉했다.
“야! 오늘 아침은 미역국에 소시지, 김치 볶음이다. 빨리빨리 준비해라!”
성격이 급한 남편은 이어폰을 끼고 아침 뉴스를 듣고 있는 내게 명령했다.
“아! 진짜 밉상! 세이야, 아빠가 지금 아침 먹는데 같이 먹을까? 세이는 뭐 먹을까?”
둘 다 메뉴에 양보가 없으니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한다.
“아니, 난 안 먹을래”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밥을 찾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눈뜨자마자 배고파한다. 그래서 따로 먹게 되면 꼭 두 번을 차려야 했다. 주말의 여유는 반납하고 부랴부랴 인덕션에 열을 올리고 냉장고를 뒤졌다. 난 이럴 때마다 마음을 가라앉히는 글귀를 떠올렸다. ‘그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데,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니는 참 좋겠다!’ 그러면 이내 욱하는 마음이 가라앉았다. 남편은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미루는 거 없이 다하고 산다. 그건 시댁 식구들도 인정하는 바다. 어릴 적부터 그래서 아무도 못 말린다고. 본인도 수긍하며 그건 자기가 그만큼 능력이 있는 거라고 과시했다. 빚도 재산이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건 상황에 잘도 끼워 맞췄다. 가치관이 조율 안되니 나는 각자 살기를 선택했다. 물론 한 집에서 가족이라는 명목으로 함께 살고 있지만 서로에 대해 간섭하지 않기로 말이다. 물론 남편의 수입을 아직 모르고 사는 걸 이해 못 하는 지인도 있지만 어떨 땐 편한 것도 있다.
아이는 토요일 오전 일정을 소화했다. 9시 수영과 11시 레고 코딩센터 수업을 받았고 오후 1시가 지나가며 나도 아이의 픽업을 끝냈다. 오늘은 조카가 생일이라 아이와 함께 동생 집에 갔다. 조카와 아이는 동갑이고 둘 다 외동이니 어릴 적부터 자주 만났다. 아이가 오랜만에 이모 집에서 자겠다고 했다. 웬일이야? 오랜만에 늦게까지 책도 보고 과제도 하며 홀가분한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카의 파티를 도와주고 동생과 시장을 다녀오니 벌써 이른 저녁이 되었다. 집에 들어와 물건을 정리하고 노트북을 켜니 남편이 퇴근했다.
“어디 가?”
“응! 나 낚시 갔다 올게. 거래처 사장님이 가자네! 그리고 내일 엄마랑 형이랑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다. 형이 오전 근무라고 마치고 바로 온다네.”
며칠 후 남편이 자기 생일이라며 어머님이랑 같이 밥을 먹자고 했다. 내 생일은 아무것도 없는 평일과 같은데 어머니와 남편은 매달 함께 밥 먹기 위한 뭔가를 만들어 냈다. 내일 약속은 저녁 5시 30분 식당을 예약해 둔 상황. 본인은 낚시 갔다가 저녁 시간에 맞춰 올 거면서. 또 나더러 알아서 챙기라는 소리다. 어머님이랑 결혼 안 한 아주버님은 함께 살고 있다. 두 분이 따로 온다는 건 어머님은 지인들과 점심 약속을 끝내고 바로 온다는 얘기. 확실한 시간도 없다. 더 이상 말해서 뭣하랴. 이러는 것도 10년이 지났는데. 이 상황에서 “왜?”라고 했다면 남편은 버럭 화를 내고 그것 하나 못 챙기냐고 또 싸울 거다. 이젠 서로의 성질머리를 아니 웬만해서 다투지 않으려고 한다. 어차피 바뀌지도 않을 거니까. 오늘은 혼자만의 시간을 만끽하려고 좋아했는데 역시나 하늘은 좋은 것만 주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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