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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Apr 07. 2024

100-34 부모의 형제

“선생님! 잘 지내요? 지금 통화돼요?”

“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에요. 선생님 보고 싶어서 전화했죠!”

“음. 아닌 것 같은데 항상 밝은 사람이 갑자기 전화한 건 무슨 일 있는 것 같은데?”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고 다시 식탁에 앉아 아이는 공부를,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이제 막 집중하려는 찰나 예전에 함께 일했던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평소 아주 쾌활하고 긍정적인 분이라 특별한 용건이 있지 않는 경우는 주로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고민 내용은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신 친정어머니가 한 번씩 이모들의 안부를 물으면 자신이 어찌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이모들과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면회는 못 와도 친정엄마한테 전화해 주길 바랐지만 모두 바빠서 미안하다거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차츰 시간이 지나며 그들에게 서운함이 커져 미워하는 감정이 생겼는데 ‘자신이 너무 못된 건가?’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선생님은 외동으로 자랐고 답답한 마음을 전할 길이 없을 때 문득 내가 떠오른다고 했다.     

“선생님이 잘못된 건 없어요. 선생님은 딸이니 당연히 이모, 삼촌들한테 부탁할 수 있는 거예요. 더구나 어머니가 젊으셨을 때 형제간에 도움을 많이 주셨다면 이제 그분들이 베풀어야 하는 게 맞고요. 그런데 그것도 그분들의 마음가짐이니 선생님이 재촉하거나 이해하려고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엄마가 이모나 삼촌들 안부를 물으며 바빠서 전화를 못하는 거라고 나한테 이해하라고 하면 너무 화가 나요!”

“맞아요, 선생님.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그래도 어머니가 선생님께 좋은 기억만 남겨 주고 싶으신가 봐요. 선생님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요.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내 말이 끝나자 갑자기 전화기 너머로 선생님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맞아요. 내가 이런 말을 듣고 싶어서 전화한 것 같아요. 누군가 나한테 이렇게 얘기해 주길 바랐나 봐요.”

그렇게 선생님은 전화기를 든 채 한동안 울었다. 엄마의 우는 모습에 아이가 놀랐을까? 전화기 건너편에서 아이도 함께 울었다.

“지혜가 울고 있네요. 엄마가 우니까 아이가 불안한가 봐요. 선생님 잘하고 있으니까 지금처럼만 하면 돼요. 기운 내고! 아이 꼭 안아주고 마음 다독여요”     


선생님의 전화 통화가 마무리되니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안타까움에 눈물도 맺혔다. 나 또한 그랬다. 아버지가 호스피스 요양병원에 계실 때 작은 고모와 작은아버지께 전화 한 통 해달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그들은 몇 번의 내 전화를 받은 후 겨우 한 통 했다. 이후 아버지가 남긴 말, “전화도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했는가! 됐다 마!” 그리고 나는 그들을 한 달 후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핏줄을 나눈 형제지간이라고 다 잘 지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 경조사를 치르고 나면 인맥을 정리하게 된다고 했다. 나는 그때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핏줄을 나눈 사이도 딱 거기까지만이라고.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고 나를 지키기 위한 바운드리라 생각한다. 불필요한 끈끈함보다 적당한 거리에서 예의라도 지키는 남처럼 말이다. 


 #책강대학#백일백장#16기#요양병원#부모#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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