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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현주 Jan 02. 2024

나비모양, 당신은 누구시길래

손이 벌벌 떨리고, 식은땀이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고, 불안 증세를 호소하는 한 엄마가 병원을 찾아오셨다.
원장님과의 대화 끝에 10여 년 전, 큰 병원(대학병원)에서 갑상선수술을 받았고 약을 타드셨는데 너무 멀어서 다른 병원에서 약을 타드시고 있고 피검사도 몇 달 전에 하셨다며 일단 감기랑 장염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셨다.
혹시나 몰라 피검사결과지를 들고 와서 원장님께 보여드리라고 귀띔해 드렸다.






연휴가 지나고 오늘, 그 엄마는 추워서 벌벌 떨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콩죽 같은 땀을 흘리시며 병원으로 오셨다.
피검사 결과지는 '갑상선 기능항진증'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이야기가 되돌아가서 시작되었다.
갑상선수술 시 갑상선을 전부 드러내고 약으로 갑상선 기능을 대신하고 있었다.
'갑상선 기능이 전혀 안 되는 상황인데 어찌 항진증이 생긴 걸까?'
궁금하던 찰나 원장님의 설명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갑상선이 없는 상태에서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그 약이 너무 세서 기능이 항진되어 그런 증상들이 나타난다는 거였다.
손이 떨리고 불안증세를 보여 신경과까지 다닌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원장님은 깜짝 놀라셨다.
갑상선기능만 잘 조절되면 굳이 신경과를 갈 필요가 없는데, 안 먹어도 될 약을 드신다며 안타까워하셨다.
이내 엄마는 잘 부탁드린다며 고쳐달라고 울부짖듯 이야기를 하셨다. 듣는 내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석 달 전 피검사를 받았던 엄마는 다시 피검사를 하기 위해 주사실에 누웠다.
"사람이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 땀도 주체가 안되고 이래가 살겠나? "
" 땀 때문에 옷이 다 젖었네요. 엄마  힘드셨겠다."

어떤 말보다 이해해 드리고, 인정해 드리는 게 가장 큰 힘이 되어드릴 것 같다는 생각에 엄마말에  공감만 해드렸다.
이제 나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드셨던 걸까? 기운을 내시는 듯 보였다.
갑상선이 무서운 녀석이구나 싶어 찬찬히 한번 둘러보았다.

갑상선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장기인데 대사작용을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다.
갑상선호르몬이 많이 분비될 때는 먹은 음식이 빨리 소화되며 열을 내기 때문에 더워지고 땀이 나며 체중은 줄어들게 된다. 소화가 빨리되니 대변도 자주 나오게 되며 신경이 예민해지기도 한다.
갑상선 호르몬이 적게 분비될 때는 대사활동이 더디기 때문에 추위를 많이 타게 되고 손발이 잘 붓는다. 위장운동속도가 느려져 변비가 생기기도 하며 조금 우둔해질 때도 있다.
작은 장기하나가 가진 능력이 이만큼일 줄이야.
우리의 몸은 정말 신비롭다.






20년 전, 병원에 입사하고 얼마 안 돼서 있었던 일이다.
목젖아래에서부터 목 끝부분 사이에 꼭 나비넥타이모양으로 혹을 달고 계신 할머니가 병원에 오셨다.
처음엔 혹으로만 생각했다. 공부를 했지만 전혀 몰랐다.
수간호 언니께 살포시 여쭤보았더니 그분은 갑상선환자분이었다고 하셨다.
나는 그때 갑상선의 위치와 모양을 처음으로 목격했다.
할머니셨는데 수술을 못하시는 상황이었고 목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 의구심에 비해 엄마는 참으로 밝으셨다.
'그까짓 것'이라고 외치실 것 같은 환한 분이셨다.


갑상선 기능저하증이든, 기능항진증이든 피검사를 통해 정확한 수치를 알고 그에 맞게 약을 드셨으면 좋겠다.
없어서는 안 될 장기지만 약으로 충분히 대체가 되니 혹여 갑상선을 잃더라도 슬퍼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상상도 못 할 정도의 피곤함이 나를 덮칠 때, 그때도 갑상선에 의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갑상선질환은 약물치료, 수술, 방사선 치료등 다양한 치료방법이 있지만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예방책은 정기적인 건강검진(추가 피검사를 요청해야 됨)과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며 갑상선을 지켜보는 거라고 한다.

나비를 닮은 장기, 갑상선에게도 관심을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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