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 땅끝마을이래~" 친구들과 뛰어놀던, 교회에 가려고 왔었던 동네가 동쪽 땅끝마을이라니, 감회가 새로웠다. 무지개색깔로 칠해진 돌을 보니 제주도가 연상됐다. 길에 없던 사람들이 여기엔 몇 분 계셨다. 이곳이 관광명소가 될 줄이야. 놀랍고 신기했다. 왔으니까 기념사진 한 장 박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서쪽 땅끝마을만 가면 되겠다" 다음을 기약하는 설렘이 꽤 좋았다. 가는 내내 파도와 갈매기가 지루하지 않게 해 준다. 가다가 끊어진 길이 몇몇 군데가 있다. 아쉽지만 도로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도로를 걷는 맛도 나름 괜찮았다. 무엇이든 생각하는 것과 행동해 보는 건 다른 느낌을 선사하는 것 같다. 모든 경험은 피와 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걷다 보니 저 멀리 호미곶등대가 보인다. 진짜 다 와가는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가다가 신랑이 갑자기 서더니 바다를 향해 내려간다. 계단으로 된 곳이었는데 나도 같이 내려가 앉았다. "바다가 신기해. 아래로 흐르는데 파도가 쳐서 올라오네" 그러고 보니 파도가 내려오고 다른 파도가 오는데 만나는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파도를 바라보다 먼바다를 바라보게 된다. 한참을 앉아있던 우리. "멍 때리기 진짜 좋네." 세상 것과 단절된 채 바다와 우리만 남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멍 때리기를 한 것 같은데 참으로 고요했다. '멍 때리는 게 이렇게 좋았나?'라고 느꼈을 만큼 이름 모를 행복과 만족감이 몰려왔다.
"발은 좀 아픈데 오늘 힐링 제대로 한 것 같다" 이 말을 두세 번씩 하는 신랑을 보니 진짜 좋았구나 싶다. 드디어 호미곶광장에 도착했다. 관광명소인 만큼 사람들이 북적된다. 겉에서 상생의 손만 보이게 기념촬영을 하고 얼른 버스승강장으로 향했다. 운동어플을 보니 14.4km를 걸었고 3시간 30분이 소요됐다. 블로그에선 4시간 30분이 소요된다 해서 겁을 좀 먹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다행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버스를 타고 다시 구룡포일본인가옥거리로 향했다. 버스로 2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즐거웠으니 괜찮다. 신랑은 일본인가옥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면 섭섭할 것 같다고 내가 이끌고 갔다. 드라마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 여기저기를 설명하며 끌고 다녔다.
"경치는 좋네" 계단 정상에서 바라본 구룡포항은 몹시 예술이었다. 관광지답게 역시나 사람이 많다. 얼른 내려와 차에 몸을 실었다. 차에 오니 긴장이 싹 풀리는 듯했다. "우리 짜장면 먹으러 가자. 아까 본데 있잖아" 우리는 돌짜장이라는 생소한 짜장면을 먹으러 출발했다. 아직 저녁시간 전이라 그런지 고요했다. 시그니처 같은 돌짜장(2인분)을 시키고 기다렸다. "짬뽕도 먹고 싶은데"
고민했지만 짜장면만 먹자고 했다. 음식이 나왔는데 지글지글거린다. 돌판에 올려진 짜장면, 생소했지만 맛은 좋았다. 신랑은 조금 아쉬운지 공깃밥을 추가해 비벼먹기 시작했다. 약간은 자극적인 것 같았으나 맛은 있었다. 다음번엔 아이들도 데려
오자고 했다. 밖에 나와도 아이들 생각이 자꾸만 난다. 각자 친구들과 보내고 있을 아이들이 보고 싶어 졌다. 다 먹고 난 우리는 배를 두드리며 집으로 향했다. "진짜 힐링 제대로 한 것 같다. 니는 안 그렇나? 다음 주는 순창 갈까?" 벌써부터 다음을 기약하는 신랑이 귀엽다. 좋은 곳에 데려와주고 맛난 것도 사주고, 오늘은 조금 더 사랑스럽기도 하다. 바다와 함께 추억을 곱씹고 추억을 만들었다. 바다는 한없이 주는 엄마 같아서 참 좋다. 또 한 번 바닷길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