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예방접종이 시작됐다.
작년에도 해봤기 때문에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만 역시나 힘들다.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에게는 고함을 지르다시피 해야 되고 다른 말을 하시는 분에게는 알아듣게 설명하고 또 설명해야 된다. 문진표를 붙잡고 설문하는 것부터 서명을 받는 것까지 고행도 이런 고행이 없다. 오죽했으면 어제 지켜보던 한 엄마께서
"간호사 선생님들 힘들겠다. 저리 몬 알아들어가 우야노."
라며 우리의 수고를 알아봐 주셨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많이 몰리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역시나 많다.
작년엔 노인독감만 1270명을 놓아드렸고, 외래 독감도 500명을 맞춰드렸다.
예방접종이라면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했던 것 같다. 고작 1년이 흘렀는데 체력의 문제인지, 더 예민한 분들이 많아서인지 저녁이면 녹초가 된다.
안경을 끼고 잠들어 이마에 안경콧대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날도 있고, 독서를 해보겠다고 엎드려 읽다가 언제 잠들었는지도 몰라 형광펜이 낙서처럼 되어있던 날도 있다. 이제 고작 일주일 지났는데 벌써부터 내 저녁을 뺏긴 거 같아 속상하다.
저녁운동도 하고 싶고 글도 읽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고 글도 쓰고 싶은데 짬을 내려야 낼 수가 없다.
요즘 나처럼 이렇게 시간을 쪼개서 사는 사람은 없을 거라며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쪼개고 쪼개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실내자전거 위에서 글을 쓰고 독서를 하며, 음식을 만들며 유튜버음원을 듣고, 걸으며 기도하고 음원 듣고, 점심시간엔 제자리걸음하며 독서를 한다. 그런 사람이 저녁만 되면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눈사람이 된다.
저녁 먹고 상 치우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다. 어느 날은 자다가 일어나 씻은 적도 있다. 예방접종에 외래진료가 더해지고 그 모든 시간을 긴장상태로 지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지만 기력 없는 내가 낯설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저녁 없는 삶을 일주일 살다 보니 나를 잃은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데 그것조차 말처럼 쉽지 않다.
18일인 내일부터는 65세 이상 전 연령에서 예방접종이 시작되고, 기초생활수급자와 중학생까지 접종도 시작된다. 생각만 해도 침이 꿀꺽 삼켜지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며 마음을 추슬러본다. 곧 나아지겠지라는 믿음으로 저녁 있는 삶을 기다려본다. 어쨌거나 내일을 위해 오늘밤엔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