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엄마 Dec 05. 2021

고래는 바다를 유영한다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달아오른 해가 똑 떨어지는 수평선 아래

너를 닮은 작은 고래 한 마리 살고 있다

눈을 감은 고래는 밤이 오는지 모른다.

해류에 묵직한 몸을 맡긴 채

고래는 바다를 유영한다.


해파리 떼의 촉수가 두터운 피부를 간질이고

반짝거리는 정어리들이 새카만 시야에

유성우처럼 쏟아져 내린다.

고래의 시커먼 그림자에는 가냘프고 소중한 것들이 머물러 있다.


길고 아늑한 어둠과 차가움 끝

불편하지 않을 도의 빛줄기가 고래의 등을 데운다.

작은 고래는 숨을 더 참기로 한다.

숨구멍에 볕이 닿으면 재채기를 하고 말 것이다.


때로는 숨죽여 지상의 것들을 되뇌인다.

바나나 잎사귀의 질감과 소리를

사람들의 불놀이와 엄마의 젖가슴을.

저도 모르게 그는 입을 벙긋거리고

하얀 물거품의 띠는 어물거리며 작아진다.


고래는 반듯이 누워서 허리를 튕기며 날아오르는 물고기를 본다.

그 주둥이는 작살처럼 가늘고 지느러미는 강철 날개와도 같았다.

아득한 저 밑 하늘로 떨어지는 가벼운 것들을 보지 않기 위해 질끈 눈을 감는다.

안온한 어둠과 함께 바다 소리가 들린다.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고 있음을 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