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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엄마 Jun 02. 2021

우리 집에는 요정이 산다

자폐 스펙트럼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뽀얀 피부와 째진 눈을 가진 요정이 산다.

머리숱은 얼마 없어 듬성듬성한데 머리통은 크고 작은 입 안의 이는 삐뚤게도 났다.

요정은 아주 개구지게 생겼고 신이 나면 마녀처럼 깔깔거리며 웃는다.

보라색 작대기에 하늘색 둥근 머리가 달린 색종이 요술봉이 있는데, 요정은 그 요술봉으로 '아!' 하면서 마법을 부린다.


마법은 너무도 찬란하여 나는 요정을 사랑하게 될 수 밖에 없다.

요정이 때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폭풍 같은 황홀감에 빠지며, 깔깔 웃으면 고무감에 도취되고, 괴성을 내도 노랫소리로 들리며, 작은 궁둥이를 내 무릎에 들이댈 때면 깨물고 싶은 충동감에 시달린다.

요정은 참으로 작고, 귀엽고, 아름답다.

그리고 그것이 나로부터 태어났다는 것은 때로 나를 미치도록 슬프게 만든다.


너는 요정이다.

내가 낳은 요정에게는 날개가 없다.

너의 속삭임은 인간들에게 닿지 않으며

날개 없는 날개짓은 참으로 무의미해진다.

속세는 오늘도 너에게 속해 있지 않으며

그래도 너는 나의 사랑하는 요정이다.


요정이 울 때면 가슴이 시리고 요정이 웃을 때면 가슴이 사무친다.

나의 미래에는 언제나 네가 있다.

영원히 사랑스러울 너의 모습이 내 눈 안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너의 눈 안에도 내가 있다.

네가 부르지 못하는 나의 초라한 이름이 함께 있다.


요정아.

나는 그럼에도 네가 너무나 좋다.

다시 태어나도 너를 사랑하고

또 다시 태어나도 너의 꽁무니를 쫓아다닐 거란다.

그러니 요정아.

오늘도 내게 마법을 걸어주렴.


우리 집에는 요정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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