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인디 음악에 대한 인디한 가사 분석의 첫 글입니다. 첫 글은 제가 왜 인디 가사 분석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풀어보려고 합니다. 제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전 문학을 좋아합니다. 단순히 '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읽은 글을 분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창 시절에 시 구절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그 의미를 파악하던 것처럼 말입니다. 글에서 등장한 단어에 어떤 의미가 있을지, 행간에는 무엇이 생략되어 있는 것일지, 작가는 이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이게 재미있냐고요? 그럼요. 이해하기 어려웠던 문장을 분석해 낼 때의 성취감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여러 재미 요소들이 있지만, 특히 제가 좋아하는 글을 골수까지 빨아먹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쾌감이 대단합니다.
문학의 묘미는 작품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그것이 나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독서를 비유로 설명하자면 '산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때 작품 자체는 일종의 풍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작품을 분석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독서는 독자에 의존하는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독자의 집중력이나 어휘력, 문해력에 달려있다는 뜻은 아닙니다(물론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그 사람이 작품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그 사람이 이전에 어떤 경험을 해왔고, 어떤 책을 읽었는지 등에 달려있다는 뜻입니다.
많이 알려진 예시로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린 왕자」 이야기를 읽으면서 크게 와닿는 게 없다고 말합니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쓰인 책이라 읽는 것 자체에 어려움은 없지만, 그들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주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흘러 이 책을 다시 읽게 되면, 확실히 다릅니다.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어린 왕자가 이런 책이었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입니다. 여우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고, 장미와의 마지막 인사에 눈물 흘리게 됩니다.
이런 이해의 차이가 생긴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순히 시간이 흐르고 머리가 굵어졌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어린 왕자에 자신을 대입할 수 있게 되고, 장미에 또 다른 누군가를 대입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경험은 이렇게 독서의 차이를 만듭니다.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 다시 읽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군대에서 이 작품을 다시 읽었습니다. 20명의 독서하는 장정 가운데 홀로 훌쩍였습니다.
제가 독서의 수준을 높인다고 표현하지 않고, 독서의 차이를 만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요?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제 이야기의 결론이 나옵니다. 제 이야기의 결론은 '경험이 독서의 수준을 높이니 모두 경험을 많이 쌓자!'가 아닙니다. '독서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간접 경험을 쌓아야 하고, 그러니 공부를 많이 하자!'도 아닙니다.
저는 '이렇게 사람들의 독법이 다르니, 내가 이 글을 어떻게 읽었는지를 사람들과 공유하면 한 작품으로 두 배, 세 배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첫 발을 이렇게 뗐습니다.
분석 및 공유의 대상을 인디 음악으로 정했습니다. 소설, 시, 영화 등 다른 다양한 문학적 작품들도 고려했는데, 제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가깝게 접하는 게 음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인디 음악의 가사가 적당히 길고(블로그 한 두 편 분량 안으로 정리 가능하고) 그러면서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제 생각이 당연히 그 음악을 만드신 작사가, 음악가와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의 부제를 「인디 음악에 대한 인디한 가사 분석」이라고 지었습니다. 제 해석이 아니라 분석이고, 정답이 아니라 그저 독립적인 저만의 분석일 뿐입니다. 부디 제 글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