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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색 자전거 Sep 04. 2023

1. 자아는 어떻게 자라나는가 (1)

우리같은사람들 《그 많던 일기는 그저 글자가 되고》/ 인디한 가사 분석

《그 많던 일기는 그저 글자가 되고》 앨범 표지
우리같은사람들 - 《그 많던 일기는 그저 글자가 되고》
잔잔한 나의 일상 속 바람이 불어 닿았죠
바람은 파도를 만들어 시도 때도 없이 일렁거리네
그대 내 맘을 유람하는 구경꾼이었나
비춰 보인 내 마음은 볼품이 없었나
빙빙 돌아 엉켜버린 실타랠 푸는데
얼마나 걸릴런지는 모르겠네요
낯설은 나의 모습 속 빼곡히 적은 일기는
의미 없는 글자가 되어 아픔으로 기억에 남게 했네
그대 내 맘을 유람하는 구경꾼이었나
비춰 보인 내 마음은 볼품이 없었나
빙빙 돌아 엉켜버린 실타랠 푸는데
얼마나 걸릴런지는 모르겠네요


처음에 나는 이 작품을 다음 정도로 이해했었다.


"너와의 일을 기록한 일기가 너와 헤어지면서 모두 의미 없게 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헤어졌다고 해서 만날 때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들이 모두 의미 없게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봤다. 새로 떠올린 해석은 그 포인트가 사뭇 다르다. 그것은 자아와 타자 그리고 통증에 대한 이야기, 요약해 '자아는 어떻게 자라나는가'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이야기를 쉽게 풀기 위해, 또한 가사 한 줄 한 줄을 개별적으로 보지 않고 유기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떠오를 세 가지 질문을 준비했다. 시작해 보자.




1. 작품에 등장한 '일기'의 역할과 의미


일기는 작품에서 중요한 소재이다. 제목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첫 번째로 작품에서 '일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낯설은 나의 모습 속 빼곡히 적은 일기는 의미 없는 글자가 되어 아픔으로 기억에 남게 했네


결론부터 말하면, 일기는 자아를 완성하는 도구이고, 작품의 관점에서 보면 '비춰보인 내 마음'을 구성하는 도구이다. 일기는 그냥 하루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글이 아니냐고? 물론 맞다. 하지만 어떤 것을 적을지 선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것을 글로 자세히 옮기며 생각하는 과정에서 일기는 회고의 일종임이 드러나고, 일기만이 가진 독특한 회고의 특성 덕분에 일기는 자아를 완성하는 도구가 된다. 본 글 「자아는 어떻게 자라나는가 (1)」의 주제는 위 결론을 여러분께 설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아래 두 문단에서 일기를 쓰기 전, 쓰는 중 우리에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살펴보자.


1) 일기를 쓰기 전

하루에는 수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인데, 그중에서 무엇을 기록할지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쓰는 사람이 매긴 우선순위이다. 그러나 그 우선순위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그 사람이 하루 있었던 일들에 내린 감정적 평가에 의해서이다. 말이 어려운데,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보통 일기에 쓸 글감을 고르며 다음처럼 생각한다. '아 오늘 이런 좋은 일이 있었으니 일기에 적어야지' 또는 '오늘은 이런 기분 나쁜 일이 있었으니 일기에 적어야지'. 이렇게, 하루 있었던 일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매기고 일기의 주제로 만드는 것은 그 일이 있고 나서 이성이 개입하기 전 감성이 즉각적으로 내린, 감정적이며 또한 주관적인 자신의 평가인 것이다.


2) 일기를 쓰는 중

일기를 쓸 때, 쓰기 전 내린 이 평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잠깐, 그렇다고 그 평가가 일기를 쓰면서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일기를 쓰는 시간은 길다. 내 생각이 명료하게 머릿속에 글로 정리되어 쓰기만 하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수기로 적는 시간이 길지 않는가. 우리는 이 긴 시간 동안, 점점 차가워지는 머리로 그 일에 대해 생각한다. 이때 일에 대한 평가가 변할 수 있다. 그 일에 대한 감정적 평가가 바뀐다는 것은 그 일이 재평가되고, 그때 내 감정적 평가가 이성적으로 평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일기는 하루 있었던 일과 그 일에 대해 내린 감정적 평가까지에 대한 회고인 것이다. 




업무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회고 양식(Keep, Problem, Try)을 따르는 '이런저런 일을 이렇게 처리했는데 결과가 별로라서 저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자아 밖에서만 이루어지는 회고이다. 이런 회고에서 내 자아는 거의 동원되지 않는다. 회고 주체가 달라져도, 그 내용은 비슷하다.


그에 반해 일기는 자아를 넘나들며 이루어지는 회고이다. 일기 작성에서는 자신이 순간적으로 내렸던 감정적 평가도 되짚어보기 때문에, 내가 왜 그런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 돌아보며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 메커니즘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배움을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자신에 대한 배움을 쌓는 것이 과연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자신에게 이미 있는 특성을 단순히 발견하는 것인데도? 결론부터 말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자신을 변화시킨다. 자아의 완성은 다른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왜 일기가 단순한 '하루 있었던 일의 기록'을 넘어 자아 완성의 도구인지 살펴보았다. 이쯤에서 처음에 이야기했던 '일기'가 나타나는 가사를 다시 살펴보자. 어떻게 작품에 이것이 녹아있는지 확인하자.


낯설은 나의 모습 속 빼곡히 적은 일기는 의미 없는 글자가 되어 아픔으로 기억에 남게 했네


나를 이해하기 전에는, 나는 '낯설은 나'이다. 내가 왜 이런 것에 화를 내는지, 내가 왜 이런 것에 기뻐하고, 왜 설레어하는지 알 수 없다. 나에게 내가 아직 낯선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일기를 쓰고 자신을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더 이상 내게 낯설지 않은 사람이 된다.


자신에게 이미 있는 특성을 발견하는 '나 안에서의 활동'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이유는 이렇게 설명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 배움을 쌓는 것이 행동의 근거나 타당성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행동을 하는 이유는 명확히 설명해 준다. 쉽게 말해 '내가 이래도 되나? 이것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지?'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하지만, '내가 왜 이러고 있지?'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무의식적 행동과 자신에 대한 이해를 일치시킬 수 있다. 그것은 바깥의 '나'와 안의 '나'가 점점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곧 자아의 완성을 의미한다. 이렇게 작품 속에서 화자의 자아, 화자가 누군가에게 '비춰보일 내 마음'은 일기를 통해 쌓이고 쌓여 완성되어 간다.


이제 「자아는 어떻게 자라나는가 (2)」에서 이 자아가 타자를 만나 또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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