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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e chai Apr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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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일등석 비행(2) - 01.04.2024

다시 수습 비행을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내 짐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부터 모든 것이 다 낯설었다.

갤리로 일하는 엘렌이라는 친구는 나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걸 다 알려주었다.

가방은 여기에 두어라, 이건 내가 미리 준비했으니 더 안 가져와도 된다, 이거 해라, 다했으면 이제

이걸 준비해라... 수동적으로 그녀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나름 보딩 때 무얼 해야 할지 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늘 한 템포 느렸고 어리바리했다.


일단 스위트 데스크에 놓여 있는 goodies basket에 쌓여있는 랩을 다 제거했다.

(goodies basket은 각각의 승객을 위해 제공되는 초콜릿, 과자, 민트사탕 등이 담겨있는 바구니이다.)

랩 제거 후, 각 스위트의 데스크 위에 안대를 올려 두었다.

트레이닝 때, 테이블 위 무드등은 중간 밝기로 세팅하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등의 밝기도 체크하였다.

그 외에도 스위트가 깨끗하게 청소됐는지, 오래된 비행기였기에 스크린과 remote control 등 모두 다

제대로 작동하는지 체크하였다.

그리고는 갤리로 돌아와 승객들이 탑승하면 제공해야 할 서비스 물품들을 바로바로 제공할 수 있도록

세팅을 하였다.

보딩 클리어런스가 떨어졌고 비행이 시작되었다..!


일등석은 승객분들이 탑승할 때 각자의 자리까지 에스코트한다.

자기소개 및 좌석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 웰컴드링크를 제공한다.

비지니스 캐빈에서는 웰컴드링크로 샴페인, 오렌지 주스, 사과 주스가 제공되었는데,

여기는 원하는 어떤 음료든 다 제공이 된다고 한다.

정신도 없는데 복잡한 음료를 주문할까 봐 속으로 ‘제발, 제발!’을 외치며 음료 주문을 받았는데

다행히 스위트 안 미니바에 구비되어 있는 물만으로 충분하다는 승객들이 대부분이었다.

(감사합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2F 승객분이 웰컴드링크로 다이어트 펩시+얼음을 주문하여 그거 찾느라 혼자 치열하게 컨테이너, 바 위치를 찾아가며 세월아 네월아 음료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또 승객이 타셨다.

바로 나는 하던걸 멈추고 승객을 에스코트하러 갔다.

참 혼자 이거 하랴, 저거 하랴 어느 하나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일만 계속 벌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여덟 명의 승객이 모두 탑승하였고, 나는 서둘러 신문, 잡지를 권하였고, 승객들에게 제공되는 가방과 슬리퍼를 나누어 드렸다.

이후에는 메뉴와 와인 리스트를 나누어 드렸다.

그리고 대망의 아라빅 커피와 대추야자 서비스!

오늘은 정말 아라빅 커피는 못 따르겠어서 대추야자를 하겠다고 엘렌에게 말했다.

찻잔처럼 생긴 아라빅 커피잔을 머리 위 높이로 들어, 잔들을 짤깍 소리가 나게 부딪히면 커피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큐사인이다.

대추야자가 들은 상자를 든 크루가 먼저 캐빈에 나가 서비스에 대해 소개를 하고, 대추야자를 권한다.

그 이후 아라빅 커피 주전자를 든 크루가 커피를 제공한다.

트레이닝 때는 나름 잘한 서비스였는데, 오늘은 버벅버벅 말도 못 하고 커피 서비스를 하는 엘렌은

왜 이리 빠른지 그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커피 서비스 후, 뜨거운 타월을 제공하고, 엘렌은 다시 한번 아라빅 커피를 권하러 나갔다.

타월을 다 걷고 나서 시간이 되면, 승객들 음식 주문을 받는다.

비행기가 게이트에서 서서히 움직이면 이륙 준비를 한다.

데스크 위에 놓여 있는 goodies basket을 수거하고 웰컴 드링크로 나간 유리잔들을 다시 수거한다.

기내 안전 점검을 다하면 그제야 우리는 델리를 향해 출발한다.


어제 승객분들 중 특히 기억나는 분들이 있었는데 오른쪽 캐빈 1K와 2K에 앉은 부부.

이들은 사실 우리 회사 기장님, 그리고 기장님의 부인이었다.

인도로 12일 동안 여행을 할 거던 기장님은 비행 내내 인도 여행책을 읽었고, 새로 산 dslr카메라 작동법을 공부하였다. 아내 분도 인도로 여행이 처음이라 아주 기대가 된다고 하셨다.

보딩 때, ‘사실 오늘 일등석에서 일하는 첫날이에요.’라고 하니 그들은 큰 미소로 축하한다고 해주며,

비행 내내 조용할 거니 걱정 말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식사 서비스 후, 기장님이 물을 더 원하셔서 가져다 드렸는데, 갑자기 본인 좌석에서 무언가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니, 나에게 토끼 모양의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지금 너무 잘하고 있어요. 행운을 빌어요.’

너무나도 큰 응원을 받았다. 모든 비행이 이럴 거라는 법도 없고, 승객 분들도 매 비행마다 다르겠지만,

나름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두 시간 반 후, 우리 비행기는 델리에 도착하였고 그들은 밝은 미소와 함께 비행기에서 내렸다.


한 비행이 끝나고 청소하시는 분들이 비행기에 오르면 우리는 돌아가는 비행을 위한 준비를 한다.

메뉴를 바꾸고, 미니바에 음료와 간식 병들이 열려있지는 않은지, 청소는 제대로 되었는지, 전 비행에서 승객분들이 담요를 사용하였다면 새 담요를 준비해 놓는 등.

아! goodies basket에도 다시 간식들을 채워 넣는다.

그래도 나름 한번 비행해 봤다고 이번에는 누군가 말해주기 전에 먼저 준비를 해놓았다.

청소가 끝나고, 기내 안전 점검을 한 뒤 그렇게 두바이로 돌아오는 비행의 보딩이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 했을 때보다는 수월했다. 버벅거리는 것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나름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하니,

지체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달까.


첫 섹터보다는 조금 긴 3시간 5분짜리 비행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승객 분들 수가 2명이 적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조용하고 수월하고 좀 더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두바이로 다시 돌아왔고 사용했던 물품들은 사용했던 물품들끼리, 사용하지 않은 새 물품들은 사용하지 않은 물품들끼리 모아 원래 있던 곳에 두었다.


그렇게 나의 첫 일등석 비행이 끝났다.

사무장님의 격려, 살가운 맛은 없었지만 그래도 점심으로 먹으라고 샐러드도 만들어주고,

팁과 노하우를 많이 공유해 준 갤리오퍼레이터 엘렌.

비행 시작부터 끝까지 그들의 인내심과 독려가 고마운 하루였다.


퇴근하는 길, 긴장이 풀린 걸까, 머리가 아프고 너무 피곤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던 비행이었다고 말할 수 있었을 달까.


차이야, 오늘도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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