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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작가 Oct 17. 2023

발도르프 학교에서 걸린 불치병.

독서의 계절 10월이다. 

지난여름 방학을 마치고 나서 학교 행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매주 주말은 늘 그렇듯이 학교 행사들과 함께 하는데, 이 속에서 지내다 보면 학교 사람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알던 옛 친구 같고, 학교 일이 무급 수당으로 매겨지는 나의 일과 중 하나 같은 느낌이 된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1년 차 때는  주말마다 학교 일에 메여 있는 것이 싫었지만 이제는 으레 '그래, 가야지' 하면서 엉덩이를 먼저 번쩍 드는 것이 하나의 일과가 되어 버렸다. 우리끼리는 속된 말로 불치병에 걸렸다고 하는데 행사마다 무슨 일이든 "저요! 제가 할게요!"라고 말하며 어느덧 도맡아야 속이 풀리는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중증 증상으로 발현되기까지 불과 3년이면 발도르프 불치병에 걸린다. 말 그대로 완치는 있을 수 없다. 

첫 1년 동안 '나는 아이 학교만 보낼 거야'라는 얍삽한 생각을 하던 사람들도 어느 순간에는 일의 한가운데에 있고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척척 그 일을 해내게 된다. 그래서 발도르프 학교는 아이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도 성장하는 곳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올해 둘째의 1학년 1학기 여름방학이 지나자 학교의 행사들이 줄지어 터지기 시작했다. 코로나로 2년간 감감무소식이었던 학교의 행사들이 우후죽순으로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3년 차인 나에게는 모두 생소한 것들이었다.

첫 번째 행사는 설명회와 바자회였다. 9월 모든 발도르프 학교들은 입학 설명회를 하기 시작한다. 내년을 준비하는 학교들은 어떻게 해서든 많은 학부모들을 모집하기 위해 많은 인프라를 대동하여 적극 홍보에 나선다. 하지만 발도르프라는 철학 자체가 한계에 있기에 홍보는 사실 우리만의 그라운드에서만 펼쳐지는 느낌이 있다. 그럼에도 이 철학을 알고 싶어서 알음알음 찾아오시는 부모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면 어찌나 감사한지, 그러면서도 한편에는 부디 잘 버텨주십사 하는 마음도 있다. 처음에 설명회에 오셔서 너무 좋다고 말씀은 주시지만, 현실에 부딪히는 많은 것들로 인해서 선뜻 선택은 쉽지 않은 것이 이 교육이다. 


쨌든, 9월 설명회날 진행하는 바자회로 7월부터 학교는 들썩였다. 엉덩이가 무겁지만 그래도 할 때는 해야 하는 내 성미에 열심히 집까지 제공하며 집에 사람들을 불러 모아 바삐 수공예 공장을 돌렸다. 수공예를 하는 이유는 바자회에 내다 팔 물건을 학년별로 준비하는데, 학년별로 수공예과목에서 진행되는 것들로 부모들도 함께 작업을 해내간다. 1학년에서 대바느질을 한다고 한다면 1학년 학부모들은 대바느질을 이용한 작은 고양이, 오리, 토끼 같은 인형, 2학년에서는 코바느질을 배우니 코바늘을 이용한 무지개바구니, 3학년에서는 직조를 배우니, 직조틀로 만든 티코스트너, 키링, 4학년에서는 십자수 오너먼트, 5학년에서는 대바느질을 이용한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6학년은 발도르프 인형 등 이런 식의 진행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의 수공예라고만 생각한 나에게 큰 시련과 충격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코바느질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둘째가 1학년인 죄로 나는 유튜브를 보며 대바느질을 배웠다. 그리고 밤새 고양이 인형 4개나 떠야 했다. 게다가 첫째가 3학년인 죄로 난생처음 직조틀을 마주하며 티코스트너도 2개나 완성했다. 

막상 하기 전에는 '이걸 왜 해야 하나'라는 1차적인 하기 싫음에서 시작했으나, 막상 대바늘을 장착하고 나니 다시 불치병이 도져서는.. 남들은 1,2개 내는데.. 4개씩이나 해버리는 성과를 냈다. 물론 성과급은 주지 않지만 나름의 뿌듯함과 나중에 고양이 인형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귀동냥으로 들으며 조용히 스스로를 칭찬했다. 

 

수공예만 한다고 해서 바자회 준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팔 물건을 만들었으니, 이제 오는 미래의 우리 학교 학부모들을 위해서 체험 부스를 마련해야 한다. 이 역시 학년별로 진행되는데, 1학년은 털실로 거미줄 만들기, 2학년은 양모볼 만들기, 3, 4학년은 밀랍담금초 만들기, 5학년은 염색하기 체험, 6학년은 이날 쓸 돈을 숲 머니라는 환전 작업과 기타 모든 작업에 투입되었다.  7-8학년은 먹거리 부스를 진행하는데, 훗날 먼 여행 등 지출이 많은 학년들이기 때문에 이때 바짝 벌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게 선배 학부모들의 공헌이었다. 참고로 상급은 아이들이 직접 나와서 먹기를 판다. 알음알음 알고 지낸 언니들이 파는 사탕이며 소시지에 저학년 아이들은 눈을 뗄 수가 없고 이날 주머니 털리는 일은 시간문제다. 


그렇게 설명회&바자회가 임박하는 날이면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몇 명이나 이번 설명회에 올지 온갖 촉과 정보력을 동원하며 한껏 들뜬 마음으로 기다린다. 행사 일주일 전까지도 기대하던 인원이 아니면 올해 홍보가 덜 된 것은 아니냐며 쓴소리들도 가끔 한다. 사람들이 많은 학교이기에 그런 쓴소리들은 넘어가야 하는 널찍한 마음도 생긴다. 


행사 당일은 정말 요란 난리 시끌벅적!! 아침부터 다 같이 밥 먹고 시작하는데, 8학년에서 준비한 식사를 먹고 나면  각자 학년으로 올라가 오늘의 체험 부스를 진행하기 바쁘다. 나는 첫 아이가 3학년이기에 3학년 체험 부스에서 열심히 밀랍초를 담갔다. 


설명회가 마치 나면 내방객들.. 미래 우리 학교의 학부모님들은 학교를 둘러보기 위해서 교실들에 들어와 보는데, 우리 학년 같은 경우에는 체험도 체험이지만 동시에 학부모님들의 고민까지도 들어주기 바빴다. 가령 이 학교를 보내니 실질적으로 어떤지에 대한 찐 생활에 대한 토크라고 해야 하나? 실제로 어느 학부모님께서는 설명회보다도 체험부스에 와서 이야기 나누니 훨씬 도움이 된다고 감사하다고 몇 번이고 인사를 하고 가신 분들도 계셨다. 


이번 3학년의 밀랍초 체험부스에는 사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우리끼리의 잔치가 되었다. 

오랜만에 교실에서 모인 학부모들은 그저 오랜 친구들처럼 근황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을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기 바빴다.. 손님이 우리의 기대처럼 많이 오지 않았지만 그저 그것 또한 우리의 추억이 되는 날이었다. 함께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과.. 그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 우리 학교의 가장 큰 장점이다. 


올해 9월 16일 학교 설명회&바자회도 잘 마무리가 되고 한숨 돌릴 때쯤.. 

10월 "대동제"라는 체육행사가 스멀스멀한다는 소문이 시작되었다.... O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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