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rk작가 May 30. 2022

2춘기를 아시나요?

쌍쌍바가 꼭 초코맛만 있으라는 법은 없잖아!?

발도르프 학교에 다니는 우리 아이는 벌써 올해로 2년째가 되었다. 

미디어에서 쩌든 세상에서 벗어나.. 

이곳에서 만큼은 안전하게! 자연스럽게! 매우 아날로그스럽게!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고,

역시나 지금도 그렇게 잘 자라나길 바라는 중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점점... 

아이의 말투가 조금씩 심술궂게 변하고 있다. 

마음속에 화가 잔뜩 버무려져 있는 느낌이랄까??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 같은 느낌!! 



무슨 말이든 말대꾸는 끊임없이 하고 있으며 

동생의 존재를 개무시하며 차라리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거침없이 무자비한 말까지 퍼붓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다행히 아직 욕은 아님) 

내가 왜 무리해서 이 시골까지 왔는지에 대한 이유가 살짝 무색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을까?

친구와 대화하다가 요즘 2춘기라고 불리는 사춘기도 아닌 요상한 것의 정체를 듣게 되었다. 

1춘기, 2춘기, 3춘기, 4춘기.....중1병, 중2병 이렇게 학년마다 혹은 시기마다 이상할 정도로 

그 또래 애들이 아주 사춘기 못지않게  난리라는 것이다.

아들 녀석에서 "너 요즘 2춘기인가"보다 했더니, 

용케 말을 알아듣고는 이제는 대놓고 "엄마 나 요즘 2춘기야, 이상하게 별것도 아닌데 짜증만 나."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까지 한다. 


인생 9년 차 아이에게 드는 자신의 감정 이야기는 생각보다 진지하거나 솔직해서 가끔 놀랄 때도 있다. 

'마음이 너무 아프지만 화가 나', '예민하니까 짜증 내더라도 참아줬으면 좋겠어'라든지 등등

인생 38년 차인 나보다 아이의 감정 표현은 더 솔직해서 내가 아이에게 다가가려다가도 멈칫하기 일쑤다. 

정말 그럴 때면.. 어떻게 해줘야 할지 막막하다. 

날이 갈수록 가관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스크림과 혈투를 벌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짜증을 내는 건지 화를 내는 건지 잔뜩 인상을 구겨 넣고 있는 모습에 나름 상냥하게 말을 걸어보았다. 

"왜 아이스크림이 잘 안 뜯어져서 그랬구나? 엄마가 도와줄까? 이건 무슨 맛이야?"

"무슨 맛이긴! 쌍쌍바잖아! 근데 엄마 봐봐! 

쌍쌍바가 초코맛만 있으라는 법은 없어! 바닐라 맛도 있지요!" 하고는 쌩하니 가버린다. 


놀리는 건가.. 한 동안 멍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꼭 이 나이에 착한 아이인척 할 필요는 없지. 그냥 너는 너의 속도대로 크고 있는데.. 

내가 잠시, 내가 바라는 '무조건 착한 아이'의 프레임으로 너를 바라본 것은 아닐까?!

쌍쌍바가 초코맛만 있으라는 법이 없는 것처럼!!! 


쌍쌍바 하나에 엄청난 깨달음을 얻은 나는.. 요즈음 시종일관 '쌍쌍바 철학'을 마음속으로 되뇌고 있다. 

그래 꼭.. 상냥한 말투로 엄마를 대하라는 법은 없지. 화가 난 다고 무조건 참으라는 법도 없어. 

꼭 그래야 하는 법은 없는데... 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거니.....?



    

"발도프르에서는 생을 7주기로 나누는데, 
두 번째 7주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은 번데기에서 이제 막 나온 나비와 같다"


이 시기 아이들은 안에서 작용하는 힘으로 자신의 능력을 새롭게 깨우는 문턱에 서 있다고 한다. 

나비가 세상을 날기 시작하든, 이 작은 아이는 세상의 흐름을 타고 올라 자신의 주변의 것을 탐색하고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도 되짚어보는 시기인 것이다. 그리고 사고와 감정이 마구 성장하는 시기이다. 

그렇게 책을 찾아보고 아이의 감정 상태를 보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신체와 존재를 알아가면서 존재의식이나 자존감이 높아지니.. 

세상에 모든 것에 혹은 엄마의 말에 반감이 생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주변을 툭툭 쳐보면서 어디까지가 한계점인지 

스스로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그렇게 생각해보니. 아이의 심술궂은 2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씩 해답이 보이는 것 같다. 

'쌍쌍바 철학'을 바탕으로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인정'의 방법으로 국민 육아 해결법 '그랬구나'방법과 '스킨십' 방법을 써보는 중이다.  


'동생이 그렇게 말해서 네가 서운했던 거였구나 그래서 속상해서 짜증이 났던 거였구나' 

'네가 먹기 싫은 반찬이었는데, 억지로 먹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구나'

'심심해서 만들기를 하고 싶었는데 만들 종이가 없어서 짜증이 났구나'라는 식으로 

계속 말을 걸어주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짜증이 확 줄어들고 있는 중! 

물론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아주 상냥하게 "그랬구나~"라고 말했더니 "그래서 뭐!!"라는 짜증이 돌아왔지만

지속적으로 말을 걸어주니 아이의 말투도 한결 편해지는 것 같았다. 

역시나 신통방통한 '그랬구나'의 힘!!!


그리고 아침 등교 전에는 무조건 뽀뽀 세례를 해주며 잘 가라고 인사를 잊지 않는다. 

먼발치에서 아이가 안 보일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다. 

아이는 가면서도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며 끝까지 인사를 놓치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학교가 무척이나 가기 싫은 월요일 아침이지만 아이는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았다. 

물론 일시적인 반응일지라도.. 



아이의 작은 변화에.. 혼자 나름 정의를 내려본다. 

인생 9년 차인 아이는 끊임없이 본인이 사랑받고 있고, 

관심받고 있다는 존재임을 매우 명확하게 확인하고 있는 것 같다. 

더불어 자신의 존재가 과연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도 

엄마의 반응을 통해서 체크하며 나름 인정받기 위해 노력 중인 것 같다. 

혹시나 지금 2춘기를 겪고 있는 모든 아이들이 그런 상태는 아닐지...?


2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과 그 엄마들에게 격한 공감과 격려를 보낸다.. 

그리고 혹여나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발도르프 학교 면접 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