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도 연애하듯
상담 업무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민원을 마주하게 됩니다. 민원의 다수는 일정 지연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인적 자원과 시간은 한정적인데, 고객은 불편함과 불안함을 빨리 해소하고자 일정을 독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담사는 접수 순서대로 처리하고 있으며, 현장의 상황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고 안내하는 것이 매뉴얼입니다. 게다가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하청업체에서 일을 하고 있고, 하청업체에 직접 연락하는 방법은 없습니다. 전산으로 처리하고 있기 때문에 전산을 본 담당자가 민원 건을 신속히 진행하길 바랍니다.
요즘처럼 정보화된 사회에 오전에 물건을 주문하면, 오후에 배송되고, 오후에 주문하면 새벽배송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AS도 당일 처리가 되길 바랍니다.
고객과 상담사는 AS가 신속히 해결되길 바라지만, 서로 한 편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고객은 해결을 원하고, 상담사는 전달을 답합니다. 고객은 확답을 원하고, 상담사는 전달을 답합니다. 상담사의 업무는 전달이기 때문입니다. 확답을 원하는 고객은 상담사에게 불만을 토로하거나, 해결을 위한 강수를 두기도 합니다.
그 강수는 주로 상급자를 요청하거나, 상품을 해지 언급입니다. 물론 소비자보호원이나 언론 유포도 있지만, 그 경우는 보고로 진행되어 직접 민원 처리를 하진 않습니다.
고객의 강수를 맞이한 상담사는 고객의 요청이 불만이 되지 않도록 상급자를 요청하는 경우, 보고를 합니다. 또한 상품을 해지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고객의 말에 호응하며, 신속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고객의 해지 언급은 정말 해지가 아닌 신속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상담사가 고객이 해지하겠다고 하니, 해지 안내를 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난 고객은 상급자를 요청했습니다. 보고를 받고, 고객께 바로 연락을 해서 사과드렸습니다. 고객의 말을 경청하고, 호응한 다음, 상담사에 대한 교육 및 신속한 AS를 진행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10여 분 가까이 화가 난 고객을 진정시켜 드리고, 상담사를 불렀습니다.
“OO님, 오늘 상담하신 OO고객님 기억하시죠? 고객이 AS가 지연되어 빠르게 처리 요청하신 걸 해지 안내를 하시면 어떡해요. 상담사 불만으로 다시 연락 주셔서 사과드렸어요.”
“팀장님, 고객이 해지해달라고 하셔서 해지 안내한 것뿐인데요. 저도 처음에는 빠르게 AS 할 수 있도록 전달한다고 안내드렸어요. “
“OO님, 처음에는 잘하셨어요. 그런데 고객이 해지를 말씀하신 것이 정말 해지를 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AS가 지연되니,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해지하겠다는 건데.”
“저도 여러 차례 AS 독촉 안내를 드렸는데, 고객이 해지하겠다고 해서 해지 안내를 한 거예요. “
상담사도 고객의 말 뜻이나, 제가 말하는 의도를 알지만 이미 자기 방어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모양입니다.
“OO님, 만약에 여자 친구와 어떤 일로 다투었어요.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하네요. 그럼 OO님은 사과를 하거나 달래다가 여자 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으니, 헤어지나요? “
“아니요. 팀장님이 무슨 말씀하시는지 바로 이해했습니다. “
상담사의 격앙되었던 말투나 눈빛이 변하며, 조금은 진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팀장이 민원 건으로 부르니, 질책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고객의 끊임없는 요구로 살짝 짜증이 난 상담사는 고객이 해지해달라는 말에 해지 안내를 했을 것입니다. 고객의 의도를 모르지 않았을 테고, 제가 부른 의도 또한 모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집을 부리던 상담사도 여자 친구 비유로 이야기를 하자, 마음을 열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아마 질책하는 태도였다면, 자기 방어를 지속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도 대화를 통해 질책이 아닌 그를 생각해서 이야기를 한다는 걸 깨달았을 것입니다.
고객도 상담사도 결국, 사람 관계는 대화를 통해 진행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여는 것은 미사여구가 아닌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전화 상담이다 보니 눈이나 얼굴을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진심을 알아채기가 더 어렵습니다. 게다가 평소 대화를 해 본 사람이 아니라 어감과 대화 내용만으로 상담이 진행됩니다.
상담도 연애하듯, 고객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아채야 합니다. 대화 내용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사람이 아닌 Ai가 더 잘합니다. 오늘도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정서적인 상담을 하고, 상담사에게 피드백을 하며, 하루를 살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