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어머니 말씀 좀 들으세요.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언제 내려오니?”
“전 날 내려가려고요.”
“추석에 차례 지내지 말자고 했다면서?”
“네, 몇 해 전부터 예배드리고 있잖아요. 가볍게 다과로 예배드려도 되고, 아들인 제가 제사를 안 지내서 결국 대가 끊길 텐데.. 의미가 없잖아요. “
“너희한테 강요할 순 없지만, 내 대까지는 하고 싶어. 그리고 요즘에는 가족들끼리 먹을 음식만 준비해서 하고 있어. 예전처럼 홍동백서도 따지지 않고 간소하게 지내는데, 그것마저 하지 말란 소리는 하지 마라. 그리고 네 생일이니까 미역국을 끓일까 하는데 어떠니? “
“미역국으로 차례를 지낸다고요?”
돌아가신 조상을 기리며 지내는 차례에 탄생을 기리는 의미인 미역국을 올리는 건 모순적인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 차례는 자장면이 올라가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우리 집 일이 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네 엄마가 옆에서 뭐라고 한다. 바꿔줄게. “
“이랑아, 아버지 좀 말려. 주위에서도 웃는다. 미역국으로 차례 지내는 집안이 어디 있냐고. 생일은 당겨서 할 수 있으니까. 미리 챙겨 먹어. 집에서는 탕국만 끓일게.”
“생일이니까 미역국이랑 잡채를 진이가 한다고 해서 그 걸로 아침 먹자고 한 건데, 결국은 차례를 지내시겠다는 거군요.”
“그러게, 아버지 고집을 누가 꺾니? 늘 하던 거라 동네 사람들 장 볼 때 가서 같이 사면돼. 그리고 아가한테 장 보지 말고 그냥 오라고 해. 차도 없이 대중교통 이용하는데 짐까지 많으면 힘들어. “
아버지는 올해 70세이신데, 전형적인 가부장적인 성격이십니다.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 임 씨의 족보를 가보처럼 여기시고, 제문도 한문으로 직접 적어 올립니다. 차례도 정성이라고 생각하시고, 지금껏 음식은 어머니께서 손수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도 60이 넘으셨고 힘드실 텐데, 며느리들에게 도와달라는 말 없이 아버지의 결정에 따라주십니다.
아내가 차례 음식을 주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말씀드렸지만, 어머니께서는 한사코 반대하십니다. 몇 십 년 동안 한결 같이 하셨던 거고, 시부모님께 올리는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니,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어머니를 도와 차례 음식을 할 생각에 마음이 어려운가 봅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집에 오면 손님 대하듯 아무것도 못하게 하시는데, 며느리 입장에서는 가만히 쉬고 있는 게 더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주방이 좁아서 둘이 하긴 불편하고, 정리를 안 해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은 요리하기 힘들어. 쉬엄 쉬엄하면 되니까 맛있게 먹기만 해.”
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저는 감사해하지만, 고부간은 다른가 봅니다.
아내는 마음이 어렵겠지만 저는 기다리던 날입니다. 9월 17일이 생일인 저는 추석 당일과 겹쳐서 더욱 의미 있는 날입니다. 독립하고, 부모님과 함께 보내는 생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로 시간을 내어 부모님과 한 끼 식사 한 적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추석을 계기로 가족이 함께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매년 생일이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용돈을 보내주시곤 합니다. 저도 추석이면, 장 볼 때 보태시라고 용돈을 보내드립니다. 보통 생일과 추석이 같은 달이라 <의좋은 형제>의 쌀 가마니처럼 돈이 오고, 갑니다. 아내가 아버지께서 용돈 주셔도 마음만 받으라고, 장 보느라 무리하셨을 텐데, 눈치 없이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내에게 알겠다고 하지만, 눈치가 없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용돈을 주시는지 알기에 마흔 살이지만, 용돈을 받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일흔 살이기에 정년퇴직을 하신 지도 오래되었고, 소득원이 없어 국민연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일거리가 생길 때마다 꾸준히 일을 하고 계시고 그것을 아껴서 생일이면 용돈을 보내주십니다.
심지어 용돈을 보내주셔도 보냈다는 문자나 생일 축하한다는 전화를 하시지도 않습니다. 생일에 통장을 확인하면 아버지께서 용돈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용돈을 받았는지도 잘 모릅니다.
말없이 아들의 생일을 챙기는 아버지께서는 생일을 함께 보낸다는 것만으로도 좋으셨나 봅니다. 차례에 의미를 두고 있진 않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만 그래도 미역국으로 차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