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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Oct 25. 2022

물병

임신 2기에 들어서며 별안간 남편이 더 좋아지게 되어서 그것이 뱃속 아이에게 매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니, 절반은 제 아비를 닮았을 생명체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한쪽으로 사랑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어쩐지 외톨이가 되어간다는 느낌도 갖게 되었다.

(아이러니하다. 매일 나는 두 사람 몫을 살고 있는데 어쩐지 외로움이 깃든다)

삼십여년 넘는 시간동안 ‘나, 외톨이 태생이로구나’ 라는 감각으로 살아왔기에 그다지 어색한 감정은 아니지만

어쩐지 결혼과 임신 후, 이전엔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외톨이의 서막이 열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몇 없는 친구들 중에서도 이른 결혼을 하고, 이른 임신을 했기 때문도 있다.

임신이라는 것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이지만 임신 전과 후의 인생은

아주 다른 것으로 여겨야만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불만이나 어려움을 줄일 수 있겠다는 것을

요즘은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홀몸으로의 나를 진짜 나의 모습이라 여기고, 그것만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서

나의 매일을 평가한다면 어떨까. 끔찍하다.


나는 그냥 하나의 빈 물병이고 거기에 어떤 액체를 담느냐. 그것만이 하나의 사실이고 진실이다.

라고 여기기로 하고 살고 있다. 훗날 아기를 돌보며 고군분투 하는 나도 나일 것이고

홀연히 혼자 좋은 맥주나 홀짝거리던 시절의 나도 그냥 나였다.

나라는 물병에 담긴 것이 지금은 아기, 예전엔 맥주였다고 여기기로 한다.

아기를 돌보면서 ‘나를 잃었구나!’ 라는 탄식은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하나로 생각해낸 이론이다. 물병 이론.

어차피 아기가 있기 전의 내 인생도 딱히 줏대나 확신있게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불완전한 생활이었다.

그러니 이제와서 그걸 기준 삼아 지금을 비교할 수는 없다. 지금이 비교도 안되게 좋긴 하니까 말이다.


여하튼간에 이렇게 생각으로 고군분투 하고는 있지만 문득 묘한 외로움이 깃들곤 한다.

화선지에 찍은 작은 점이 퍼져나가는 것처럼.

먼 외딴 섬같은 동네에서 매일 평화롭고 단조로운 풍경을 보고있으면 나는 아주 멀어진 것을 느낀다.

그래도 천만다행인 것은 나와 정말 비슷한 외톨이가 내 옆에 있다는 것이다.

남편도 나처럼 무척 외톨이 같은 사람인데 우리의 차이점은,

나는 이렇게 가끔 외로움을 목격하고 상념에 잠기지만

그는 좀처럼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그저 내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정말 감사한 일이고 때로 미안한 일이다.

어쩌면 내게 많은 주변인이 허락되지 않은 까닭은 남편이 혼자서 일당백 해주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제는 몸이 안좋아 먼저 침상에 든 남편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쓰다듬었다.

그랬더니 잠깐 깬 남편이 뭐라고 나에게 농담을 하고 손을 잡아주었다.

사주팔자에 각자 인생에 정해진 타자의 수가 있다면 내 팔자엔 남편이 9할이 맞을 것이다.

다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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