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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령 Dec 23. 2023

상투적이지만, 메멘토모리.


며칠 전 아주 큰 슬픔을 목격했다.

내가 감히 슬픔을 ‘겪었다’라고 적을 수는 없다.

나에게 일어난 일도 아닌 데다가 실제로 이를 감내하는 중인 그 사람의 슬픔 앞에

고작 목격자로서의 내 슬픔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눈을 뚫고 3시간 가까이 걸려 나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어이없지만 눈은 참 포근히도 내렸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어느 날 내린 눈이었다.

살그머니 본넷 위로 앉는 눈들.


도착한 그곳은 친구의 어머니가 계신 곳,

상주는 고작 몇 해 전 아버지를 잃은 아픔을 가진 친구.


별안간 인생의 가장 큰 나무 두 그루를 몇 해만에 모두 잃은 친구는

파리하게 말라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그녀는 내 이름을 탄성처럼 내뱉고

이내 세차게 그녀의 어깨가 흔들렸다.


내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 그리고 내 어린 시절 가장 맛있던 칼국수와 콩국수를

만들어주셨던 친구의 어머니.


어머니 앞에 국화 한 송이와 향 한 개비 피우러 가는 그 세 걸음이

수십 걸음처럼 느껴졌다. 슬픔이 콱 내 목젖을 치는 것 같았다.


빼싹 마른 친구를 안으니 친구가 말한다.


“혜령아.. 어떡해? 왜 나만… 왜 나만… 우리 엄마 진짜 착한 사람인 거 너는 알지?”

“우리 엄마 고생만 했는데… 왜…. 왜…“



누가 그녀가 던지는 수많은 왜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러게. 왜?

왜 하필?

 왜 친구의 아물지 않은 마음을 다시금 할퀴고야 마는 걸까 인생은?

하늘에 바윗돌이라도 던지면 복수가 될까?

왜 가끔 하늘은 잔혹한 짓을 벌이는 걸까?

왜?


감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감히 더 이상의 감상도 못 적겠다. 미안해서.



친구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돌아온 친정 집에는

나의 아기가 꺄르륵 웃고 있었고 나의 부모님들이 아이에게

곱게 깎아낸 딸기를 먹이고 계셨다.

생의 감각만이 가득한 풍경.


내가 방금 다녀온, 상실과 허망함만 가득한 그곳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만이 사는 곳처럼 느껴질 만큼

행복한 풍경.

그래서 더욱 인생이 참 서늘하게 느껴지는.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트렁크 한가득 친정엄마의 음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포근히 내리는 눈을 가르며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한다.


상실의 슬픔을 보았으니 다시금 내 삶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쓸데없는 눈물은 닦고 늘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함을 다시 떠올린다.


태어난 이상 매일이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것.


아이를 태어나게 한 책임으로 나와 내 남편은 더 건강해져야 한다.

아이가 부모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할 때까지

우리가 아이 옆에서 꿋꿋하게 살아서 끝없이 사랑을 줘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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