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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han Heo Aug 03. 2021

나는 1년 동안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 입을 줄 알았던 그 옷...

작년 말, 늦게나마 여름옷들을 정리하기 위해 옷장을 열었다. 오랜만에 열어본 옷장은 처참한 수준으로 정리되지 않은 채 가득 차 있었고, 그냥 지나치기엔 도를 넘어섰기에 오랜만에 옷장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옷을 분류하기 위해 모두 꺼내었는데 포장도 뜯지 않은 옷들과 최근 1~2년은 입지 않은 듯한 옷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많은 옷들을 샀을까?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같은 옷을 많이 샀을까? 한숨이 나왔다.


어릴 적부터 옷을 좋아했던 나는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2~3벌씩을 추가로 구매하는 버릇이 있었다. 마음에 드는 옷이니까 닳으면 새로 꺼내어 입고자 여러 벌을 사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말 세일 시즌이 되면 당장 필요하지 않은 옷이나 신발들을 미리 사서 쟁겨두는 버릇이 있었는데 이런 버릇들로 인해 옷장의 옷은 넘쳐나기 시작했다. 2년 전부터는 건강을 위해 헬스를 시작했더니 운동복까지 필요해져 옷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옷장으로 부족하여 리빙박스를 추가로 구입하기까지 했다.







잘 비워야 잘 채운다?

과거의 나는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무언가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감을 느낀 것 같다. 가끔 미니멀리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잘 비워야 잘 채울 수 있다'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지금의 옷장은 마치 나의 정신상태 같이 어지러운 상태였다. 그리고 머릿속을 정리하듯 옷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입을 수 옷들과 버릴 옷들로 분류했는데 버릴 옷들이 산더미처럼 나왔다. 낡은 옷들은 버려도 괜찮지만 유행이 지나거나 사이즈가 맞지 않는 옷들은 버리기 너무 아까웠다. 특히 지금은 입지 않지만 정장을 입고 출근하던 시절 사두었던 셔츠와 정장, 코트들은 몇 번 입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그냥 버리기 아까운 상태였다. 지금은 정장을 입지 않으니 가지고 있으면 짐만 되고, 당근마켓에 팔기에도 애매한 상태였다. 내 피 같은 돈..ㅠㅜ 결국 아깝지만 헌 옷 수거함에 넣기로 결정했다.



버릴 옷들을 들고 동네를 몇 바퀴 돌며 헌 옷 수거함을 찾았는데 대부분 수거함이 넘쳐있었다. 나만 이렇게 버리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렇게 많은 옷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찾아보니 대부분의 옷들은 수거되어 해외로 수출되는데 해외에서도 주인을 만나지 못한다면 버려진다고 한다. 이렇게 버려지는 옷들이 1년에 330억 벌이라고 하니 엄청난 숫자이다.


결국 헌 옷 수거함은 죄책감 없이 옷을 버릴 수 있게 만드는 도구일 뿐이었다.




1년 동안 옷사지 않기

2020년 연말이 되었을 때였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듯 나 또한 새해에 새로운 다짐과 계획을 세운다. 작년부터는 나쁜 버릇 1가지를 없애고, 좋은 버릇 1가지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담배를 끊고, 헬스(운동)를 시작한 것이었는데 2년 8개월째 잘 지키고 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퇴근 후 매일같이 마시던 술을 줄이고, 자기 계발을 시작했다. 요즘은 '데이터 분석을 떠받치는 수학'이라는 책을 보고 있다. 잘하고 있어! (쓰담 쓰담)


그리고 올해는 1년 동안 옷을 사지 않기로 했다.



그렇기 다짐한 지 8개월이 지난 현재, 아직까지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어서 매우 뿌듯하다. 8개월이 지났어도 생각보다 입을 옷들이 많이 남아 있다. 가끔 포장도 뜯지 않은 옷들이 나와 언박싱하는 재미도 느끼고 있고, 새 옷을 입는 기분도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쇼핑을 하지 않으니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겨 저축하는 금액도 늘어났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니 내가 세웠던 계획들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이들이 성공한 것인가.. (흐흐)



Mark Zuckerberg fashion


Steve Jobs fashion








누군가 입을 줄 알았던 그 옷

얼마 전, KBS에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내가 버린 옷의 민낯"'이라는 환경 스페셜을 보게 되었는데 '패스트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생산되고 가볍게 버려지는 옷들로 엄청난 양의 의류 쓰레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가난한 나라의 몫이었다. 개발도상국에 버려진 썩지 않은 옷들은 그 자체로 쌓여 있었고, 그 속에서 폐섬유를 먹고 있는 소들은 충격적이었다.


KBS 환경스페셜, 옷을 위한 지구는 없다. "내가 버린 옷의 민낯"


더군다나 플라스틱을 재활용하여 만든 옷들이 친환경 옷으로 마케팅되어 있지만 그 옷을 그냥 버리는 것은 플라스틱을 버리는 것과 같기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것이 오히려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Bon appetit!

김은하 작가의 Bon appetit!


지난주 Korean eye 2020 전시를 다녀왔는데 옷으로 만든 햄버거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Bon appetit'는 프랑스어로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인데 이 문구가 나에게는 공포로 다가오는 듯했다. 무심코 버린 옷들이 결국 우리의 식탁에 올라오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제는 단순히 옷장을 비우기 위한 것에만 목적을 두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어떻게 비울 것인가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였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가지고 있는 옷을 알뜰하게 입고, 잘 소비하는 것이라 '1년 동안 옷사지 않기'는 1년 더 연장될 것만 같다. (저축이나 열심히 하자!)



언젠가 옷장을 새롭게 채울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그땐 조금 더 윤리적인 가치로 채워지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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