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1/3을 보내는 사무실의 공간 배치에 대해 고민하다
유튜브에서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님의 영상을 자주 보는 편인데 문제 해결 방식이 논리적이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얘기를 듣다 보면 발상을 전환시켜주는 생각들에 감탄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우리 팀은 다른 층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사무 공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사무 공간배치에 따라 몰입과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편이다. 나 자신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라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실제 칸막이가 있고 없고 차이에서 집중력과 업무효율에 약 20 ~ 30%의 차이를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칸막이가 있는 것이 집중력에는 도움이 되지만 반대로 서로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떨어진다고 한다.
요즘 스타트업에서 유행하는 100% 개방된 공간에서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부족해지고, 옆사람과 뒷사람이 신경 쓰이게 되게 되어 주의가 산만해질 수 있고,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과거 전통적인 사무공간에서는 칸막이와 분리된 공간에서는 소통이 잘 안 되는 단점이 있다.
일단 이사갈 사무실이 어떤지 알아야 그 공간에 맞는 배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사 갈 곳의 평면도를 먼저 받아보기로 했다. 우리 회사는 공유 오피스를 이용하고 있는데 평면도상의 사무공간 배치를 본 첫 느낌은 닭장같이 매우 답답해 보였다. 물론 공유 오피스의 특성을 감안하여 면적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이지만 간신히 숨만 쉴 수 있는 수준이었고, 프라이버시는 물론 커뮤니케이션하기에도 불편한 느낌이었다. 다행스럽게 우리 팀은 인원수에 비해 넓은 공간에 입주할 수 있었고, 우리만의 공간을 잘 만들어보기로 했다.
나는 사무 공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커뮤니케이션이고, 두 번째가 프라이버시다. 이를 만족하려면 개방화되면서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먼저 동료들의 의견을 수렴해보았는데 의외로 칸막이가 없는 것을 선호했고, 서로 마주 보고 앉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이유는 대각선에 위치해 있는 사람과 계속 눈이 마주쳐서 신경 쓰이기 때문이었다. 서로 다른 취향과 선호를 모두 반영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새로운 배치를 요구하는 의견은 모두 같았다.
우리 팀이 가지고 사무용품과 책상 배치를 파워포인트에 네모 박스로 만들고, 먼저 생각하는 배치도를 그려서 공유해보기로 했다. 이것을 본 동료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배치도를 그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내가 그린 배치도에 살을 붙이기도 했다. 서로가 참여하며 점점 원하는 배치가 압축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최종 선정된 배치도는 아래와 같다.
새로운 배치는 모든 책상을 벽과 창문 방향으로 붙였고, 전체 사무실 중간에 칸막이를 새워 다른 팀과의 적당한 공간 분리를 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중앙에 위치해 있는 공용 책상인데 주인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스탠드업 미팅과 가벼운 회의를 주로 진행했고, 자리가 답답하거나 집중이 안되면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같이 일하는 업무공간으로도 변신했다. 뿐만 아니라 공용 책상으로 인해 서로의 물리적 거리를 충분히 두게 되어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효과도 있었다.
자료를 찾아보니 우리와 같은 사무 공간 배치를 '벤젠형'이라는 것을 '업무 집중 및 커뮤니케이션 형태를 중심으로 한 오피스 레이아웃 유형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소개하고 있었다. 논문의 내용처럼 자연스럽게 공식적이거나 비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형성되었고, 집중할 공간도 다양해짐에 따라 생산성도 향상되었다. 요즘처럼 코로나가 심할 때는 도시락을 싸와서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고, 화상으로 데일리 미팅도 가볍게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만 들으면 엄청 거창할 것 같지만 사실 엄청나지는 않다. 살짝 지저분한 상태라 부끄럽지만 우리 팀의 사무공간을 사진으로 찍어보았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중앙의 책상 옆에는 큰 TV가 있는데 TV를 통해 자료를 공유하며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가끔 누군가 이 공용 책상에 무언가를 조금씩 올려놓으면 내가 다시 몰래 치우고 있는데 내 자리는 더러워도 이곳은 깨끗하길 원하는 편이다. 깨끗해야 더 자주 찾고, 자주 찾아야 더 잘 소통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팀들도 있겠지만 서로의 신뢰가 기반이 된다면 개방된 사무 배치에서도 적당한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는 선에서 모두가 만족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팀 생산성에도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팀원들과 이 공간에서 새로운 생각과 의견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