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팔 년 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회사는 정글 같은 곳이었다. 매일 각기 다른 사건사고가 일어났고 졸업도 전에 일을 시작한 햇병아리 같은 내게 회사 생활이란 무기 없이 전쟁터에 뛰어든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매일매일 회사에서 열 시간을 넘게 앉아 있으면서 회사 내에서 내 역할과 내 업무, 내 존재에 대해 고민했다. 잘하는 것도 없고 어떻게 이 자리에 뽑혔는지도 몰랐다. 그저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그 어디에서도 버티지 못할 거라는 생각으로 매일을 꾸역꾸역 버티듯 다녔다. 꽤 오랫동안 왜 힘든지 이유도 모르게 힘든 시간들이 이어졌다. 회사는 적응이 되지 않았고 사적인 생활도 피곤하기만 했다. 다 같이 공부하다가 한두 명은 취업하고 또 다른 몇 명은 대학원에 진학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길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를 시작했던 그때. 아주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것 같았다. 걸어도 걸어도 출구가 보이지 않아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여기에서 그대로 주저앉는다면 그 어둠에 잡아먹힐까 봐 불안한 가슴을 안고 울면서 매일매일 보이지 않는 그 출구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새 칠 년 차의 직장인이 되었다. 여전히 나는 모자라지만 과거의 경험과 시련으로 한층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어떤 일이 와도 짜증이 나고 막막한 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일단 해보자라는 결심이 선다. 도무지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몰랐던 그때의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절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는 생각보다 잘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잘하고 있다는 그 모순적인 인정과 사실 그 자체를 받아들이며, 몇 년이 지나든 모르는 것은 계속 나온다는 절대 명제를 생각해보곤 한다. 매일 그렇게 보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지금은 불평하며 울어도 고작 한 달만 지나면 다 추억거리가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과거의 경험은 늘 현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가끔은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에 이불 킥을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험들은 어느샌가 시간이 지나면 미화되고 카메라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처럼 지나치게 매끄럽게 변한다. 내가 경험한 것인데도 영상을 보는 것처럼 한 겹의 막이 생긴다. 나는 그래서 이십 대 초반으로 돌아가겠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지금이 훨씬 좋다. 그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문제들로 시름하고 고민하고 미래의 대한 불안과 걱정은 여전하지만 청춘으로 포장되는 이십 대 초중반의 특권 같은 불안정함과 우울감보다는 삼십 대의 안정감과 무게감이 더 기껍게 느껴진다. 과거의 경험을 딛고 일어선 현재의 내가 있고, 현재의 나는 또 미래의 나를 받쳐주게 될 거다. 그렇게 경험으로부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