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썸머 Mar 16. 2022

일하는 이유와 이유를 찾는 일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연간 500파운드를 주자. 그녀가 솔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이야기하고 지금 쓴 것의 절반의 빼버리도록 허용해 주자. 그러면 그녀는 조만간 더 나은 책을 쓸 거라고 말입니다. 나는 메리 카마이클이 쓴 '생의 모험'을 서가의 끝에 꽂으며 그녀는 시인이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백 년이 지나면 말이지요.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거의 매일 돈을 번다는 것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일을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직장인의 전형인 나는, 종종 일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다. 일을 싫어하기만 한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지만 일을 무척이나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 일 욕심이 많은 것도 맞고 일을 좋아하는 것도 맞다. 그러면 나는 무조건적으로 일을 사랑하냐? 그건 또 아니다. 일이 지겹고 싫을 때도 많다. 다만 내 일이니까, 내게 주어진 일이니까 내 선에서 책임을 지고 싶은 것뿐이다. 딱히 높은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보기엔 이게 뭐야? 싶을 정도의 퀄리티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정해둔 선까지는 최선을 다하고 싶고 나만의 룰에 따라 업무에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딱 그만큼의 책임감으로 일을 대할 뿐이다. 그 과정에서 일과 싸우고 화해하고 작은 성취감으로 행복했다가 다시 절망하기를 수천 번. 이제는 일에 대한 나의 애증을 인정한다. 내가 일에 대해 가지는 감정만큼 돈을 벌 수 있었으면 아마 나는 지금보단 여유롭지 않았을까.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일에 너무 매달라지 않고 편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는 게 오래가는 방법 중에 하나라고 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일에 대한 내 태도와 성격 상 그렇게 되기까지의 길은 멀어 보인다. 


한 때는 돈 그 자체를 좋아하거나 쫓는 것은 너무 속세에 찌든 행위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저 충분치 못한 경제 교육 때문에 돈의 속성을 두려워만 해서 생긴 편견이라는 걸 깨달았다. 결국 내가 일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금전적인 부분이 제일 크다. 부모님에게서 독립하기 위해, 내가 나로서 자립하기 위해서는 그를 뒷받침해줄 재정이 필요하다. 돈은 아주 기초적인 수단이자 필수적인 요소이다. 돈을 배제하고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 생각의 제약마저 생기기 쉽다. 돈을 번다는 그 행위 자체는 무척이나 숭고한 것이다. 내가 나로서 자립하고자 혹은 나와 내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돈 버는 건 고달프지만 필요하고,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에서 나름의 재미와 힘겨움을 동시에 겪으며 매일을 살아간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다 똑같은 실내처럼 보이지만 날씨에 따라 보이지 않는 습도와 온도, 그리고 공기가 주변을 가득 메꾸고 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건 오늘처럼 비 오는 날, 약간은 서늘한 공기 속에서 열어둔 창문 새로 이따금씩 날아오는 축축한 비 냄새와 풀냄새를 맡으며 일하는 것이다. 비 오는 날 집에 있다면 최상이겠지만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전체적으로 서늘하고 약간은 눅진 공기 안에서 정신없이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다 보면 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퇴근 시간, 비 때문에 평소 퇴근길보다 다소 길어져도 다소 느릿해지는 그 시간마저 비 오는 날의 매력이다. 빗소리를 들으며 버스 창가에 기대서 하루의 시름을 조금 털어내고 귓가에 울려 퍼지는 노래를 들으며 한숨을 돌린다. 비 오는 날의 센티함과 고요, 느려지는 그 순간들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다. 일하는 이유를 찾기보다 단순히 순간에 집중하는 게 그토록 필요한 이유다.


 

작가의 이전글 결심은 무척이나 쉽고 행동은 그보다 훨씬 어려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