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글쓰기에는 구원이 있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라하는 우리 고딩 독어과 단톡방이 때릉때릉거린다. 다들 만나고 싶지만 서울에 대부분 가 있는 통에 부산사는 내가 코로나를 뚫고 가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서로의 안부를 전하다가 문득 랜선 글쓰기를 소개하고 싶어졌다. 글쓰기 하나로 전혀 모르던 사람들과 작은 공동체가 만들어지고나니 너무 좋아서. 이번엔 이미 내가 너무 좋아하는 몇몇과 이 좋은 시간을 함께 나누면 어떨까 생각만해도 행복해서 그랬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너희 반응이 어떨까. 약간 떨리기도 했다. 내가 “빠른”이기도 하지만, 하는 짓이 워낙 철없다고 놀림받는 캐릭이어서. 그냥 아직 철이 덜든 동창의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할까 싶기도 했다. 혹은 다단계 혹은 전도하는 걸로 오해하는 거 아닐까 살짝 이미지 걱정도 되었다.
사실, 잘 나가는 친구도 나처럼 좀 덜 나가는 친구도 40 초반에 보니 육아땜에, 사업땜에, 직장땜에, 미친듯이 바쁘게 열정적으로 다 비슷비슷 생산인구의 최정점으로써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배경이 타운 하우스냐, 학장동의 25년된 아파트냐일뿐. 갑작스런 우울감이 찾아와도 그 감정을 관조할 시간이 없는, 바싹 메마른 우리 동창들 중에는 “글쓰기”란 제안에 마음이 일렁일 친구가 있을까.
지금 우리는, 모모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시간을 아껴 도둑들의 금고에 넣어주는 사람들처럼, 무엇을 위해서인지 모르게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나이에 이르러 버린, 비련한 주인공들이다. 내가 없으면 힘들어질 가정, 내가 없으면 살수 없는 아이, 내가 없으면 망할 이번 프로젝트, 우리 40대가 없으면 안 돌아갈 사회.
그런데 늙음이 우리에게 갑작스런 어퍼컷을 날리고, 인생의 주인공 자리에서부터 머리채를 잡고 끌어내리는 시기에, 아무리 자려해도 흘러가지 않는 하루와, 털어낼 수 없는 외로움 속에서, 마음만은 건강히 행복하려면, 지금 이렇게 바짝말라 거칠거칠한 우리의 감성을 잘 돌아봐 주고 살펴봐 주어야 한다.
유치하다고 바쁘다고 외면한다면, 오랫동안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온 감성이 그만 안녕하고 영원히 죽어버릴 지 모른다. 너는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지 못해 한없는 무기력함으로 나아갈지 모른다.
이미 인생의 낙을 발견했다면, 그리고 이미 글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영혼을 늘 비춰보는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열외시켜줄 수 있지만.
너의 하루를 굴러가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술, 쾌락, 일, 아이, 혹은 책임감 같은 것에 불과하다면, 나는 몇 년 후에 네가 메말라 부스러지지 않도록, 아직 살아 있는 너에게 글쓰기라는 처방을 내린다.
*이 글의 큰 주제가 영어인생기인 고로, 글쓰기에 관한 영어 명언을 두어 개 첨부해본다.
Writing is a process, a journey into memory and the soul. Isabel Allende
글쓰기는 기억과 영혼으로 가는 과정이자 여행이다.
I can shake off everthing as I write. My sorrows disappear and my courage is reborn.
글을 쓸때면 모든 것을 털어낼 수 있다. 나의 근심은 사라지고 나의 용기가 다시 살아난다.
Anne Frank
2021년 7월 3일글 재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