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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Sep 30. 2023

듣고 싶은 소리가 있었다

추석 음식준비로 분주한 오전이었다. 아쉬운 나마 남편의 도움이라도 받기 위해 일단 옆에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손이 제일 많이 가는 튀김과 전을 6가지나 마련해야 하기에 점심도 건너뛸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굶더라도 남편 점심은 챙겨줘야 한다. 한참 일을 하다 도중에 끊고 식사준비를 하는 게 사실 명절 음식 만드는 것보다 더 번거롭다. 남자들은 그 사실을 정말 모르는 걸까.



이럴 땐 살짝 예민해진다. 눈치 없는 남편은 옆에서 이번엔 양을 좀 적게 하라 잔소리다. 원래 도 아닐뿐더러 저 아저씨가 나 힘들까 봐 생각해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이번 명절엔 아주버님도 시동생도 시댁에 안 오니 먹을 사람이 없단다. 그런 소릴 안 해도 딱 차례상에 올릴 만큼만 하려고 재료를 조금만 준비했다.



남편은 별생각 없이 한 말이었으나 결국 몇 해 전 제사  있었던 한 기억을 소환시켰다. 너무나 좁은 시댁 부엌 탓에 음식을 집에서 해서 들고 다. 그런데 그때 내가 튀김하고 전을 적게 해 왔다고 시어머니가 남편도 아닌 시동생에게 투덜댔고 시동생은 그걸 동서에게 동서는 다시 내게 이른 일이 있었다. 큰 며느리, 작은 며느리 아무도 제사 음식 안 만들고 나 혼자 몇 시간을 들여 준비했는데 고맙다, 수고했단 소리는커녕 그런 소릴 듣는 게 너무 화가 났다. 시어머니뿐 아니라 말을 옮기는 시동생, 동서 모두 얄미웠다. 하도 억울해 남편에게 하소연했더니 이 아저씨는 더 한 소리로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럼 좀 더 많이 만들지"



물론 좋은 의도로 꺼낸 것은 아니지만 그때 얘기를 하자 남편이 정색을 하며 말한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되는데 뭐 때문에 그런 소릴 기억하고 있냐고. 순간 추석이고 뭐고 다 필요 없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몇 시간을 음식 준비로 혼자 힘들 이 타이밍에 남편이 내게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섭섭했겠네, 미안하다, 이젠 그냥 속에서 풀어버리라 하면 나 역시 그대로 묻어둘 기억이다. 내가 어떤 소릴 듣기 원하는지 잠시 생각해서 말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지. 생판 모르는 남도 그냥 에둘러 날 위로해 주는데.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부풀 대로 부풀어진 그 물방울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 눈에 힘을 가득 준다. 주책맞게 밖으로 흘러내리는 일만은 피하고 싶다. 게다가 지금 바로 내 옆엔 감수성과는 등을 지고 사는 남편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그는 내 눈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감정을 허투루 내비치고 싶진 않다. 조명이 꺼진 게 얼마나 다행인지.



잠시 후 모든 조명이 다시 켜진다. 예상대로 남편은 옆에 앉은 날 쳐다보지도 별 다른 관심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앞쪽 좌석에 앉아 있는 몇몇 이들의 행동이 영 수상쩍다. 좀 전 조명이 꺼졌을 때도 살짝 의심이 들긴 했다. 뒷모습이긴 하나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손이 눈 부위에 한동안 머무르고 있는 게 분명 눈물을 닦고 있는 모습이다.



강사의 90도 인사에 이어 청중들은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아낌없이 그녀에게 보낸다. 그렇게 강연이 마무리되고 남편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까 우리 앞에 앉아 있던 사람... 우는 거 봤어?"

"아니"

역시, 남편은 주변엔 별 관심이 없다. 그게 그의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나도 괜히 울컥해지던데. 나 같은 사람이 많은가 봐. 눈물을 닦던 사람이 한 둘이 아니야. 오빠는 안 그렇대?"

"전혀"



이금희 전 KBS 아나운서, 마냥 평온하기만 한 그 목소리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어루만져주는 힘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다룬 '인간극장'도 그녀가 내레이션을 하면 그들의 삶에 뭔가 특별함이 있어 보인다. 눈에 익은 한국의 풍경들이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더해진 '한국 기행'은 언젠가 꼭 가봐야겠단 생각을 가지게 한다. 심지어 그녀가 잔잔한 목소리로 '1 더하기 1은 1이에요' 하더라도 감히 아니란 말은 못 한 채 당신 말이 맞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된다.



얼마 전 그녀가 게스트로 출연한 방송을 유튜브로 본 후 깊은 감명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오락 방송임에도 마법과도 같은 말솜씨로 진행자의 마음을 토닥여주는 게 마치 교양 방송을 보는 듯했다. 어쩜 저렇게 말을 이쁘게 하는지 똑같은 한국어로 말하지만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온 소리는 천상의 것마냥 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지역구에서 그녀를 초빙한 강연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같이 갈 사람이 마땅찮아 좀 어울리진 않지만 남편과 함께 서둘러 신청을 했다.



낮시간대다 보니 강당을 꽉 메운 이들은 대부분 나 같은 주부였다. 베테랑 강사로 자리 잡은 그녀는 이미 신청자들의 연령대와 직업군들을 파악하고 그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으로 강연을 준비했다. 그러고 보니 온라인 접수에서 신청자의 신상에 대해 간단히 확인하는 항목이 있긴 했다. 기대했던 강연 내용과는 사뭇 거리가 있어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것 만으로 만족했다.



강연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그녀가 무대 스크린만 남겨 둔 채 모든 조명을 꺼달라 진행 요원에게 부탁한다. 이번엔 청중들을 향해 눈을 꼭 감고 손으로 양팔을 감싸라 한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리기 시작한다. 말하는 사람은 한 명이고 듣는 사람은 수백 명인데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들으니 꼭 나에게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마치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아는 사람처럼 그리고 내 편인 것처럼 속삭인다. 어떤 일인지 딱 꼬집어 말하진 않지만 두리뭉실 누구에게나 해당 됨직한 말들로 강당을 꽉 메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 힘든 시간들을 어떻게 버텨왔냐, 고생 많았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얼마나 서운했겠냐 등등 그리고 마지막엔 꼭 '수고했다'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그러면 우리도 따라 '수고했다' 말하면서 손으로 자신의 양팔을 토닥거린다. 언뜻 사이비 종교의 교주와 그의 말을 따르는 교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따라 해라니 하긴 하지만 좀 쑥스럽다. 나도 이런데 공감력이 다소 떨어지는 남편은 어떨까 싶어 살짝 실눈을 뜨고 옆을 본다. 뻣뻣하고 쭈뼛쭈뼛한 자세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따라 하는 남편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난다. 그런데 기분이 점점 이상해진다. 열 번 이상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좀 지루하다 싶어 질 때쯤 뭔가 울컥한 게 속에서 올라오더니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다른 사람에겐 그렇게 관대하면서 정작 자신에겐 야박하기만 한 우리의 모습을 일깨운  가진 이벤트였다. 하지만 사실 그녀가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읊조리던 말들이 그렇게 와닿진 않았다. 그저 한 편의 연극 공연을 보는 듯했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손으로 자신의 몸을 토닥이는 것도 다소 인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럼에도 고마웠다. 내 삶에 대해 심지어 나라는 존재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방송에서 내레이션 하듯 뱉는 '수고했다'란 한마디에 왜 이리 마음이 뭉클해지고 따뜻해지는지.



기다렸나 보다. 내 편이 되어준 누군가로부터 잘했든 못했든 '고생했다', '수고했다'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을. 내 맘 같지 않은 야속한 세상을 사는 동안 어쩜 그 소리에 굶주려 왔는지도 모른다. 조용히 눈물을 훔치던 이들에게 애틋한 동지애를 가지게 된다. 다들 빈말이라도 수고했다는 그 한마디를 그리워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




음식 준비가 다 끝나자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적게 용기에 담았다. 대신 언뜻 봤을 땐 최대한 많아 보이게 얄팍한 수를 썼. 유치한 복수이긴 하나 기분은 약간 풀리는 듯하다. 


그나저나 앞으로 우리 집 아저씨도 눈치를 좀 키워야 할 텐데.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그의 마누라도 결코 고분고분한 사람이 아니다. 차라리 일관되게 평소처럼 침묵이나 지킬 것이지. 가끔 저렇게 눈치 없이 부인에게 말을 던지다가는 앞으로 어떤 험한 꼴을 당할지 그의 미래가 참으로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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