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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Oct 15. 2023

집밥이 그리울 때

"엄마가 감자탕 하고 김치, 밑반찬 좀 해서 들고 갈게"

"오오, 좋다"

"그리고 그때 아빠랑 도시락으로 김밥 싸가서 먹을 건데 너도 먹을래? 몇 줄 싸줄까?"

"김밥? 그럼 나 3줄만 싸줘"

"아참, 혹시 된장찌개 해서 몇 개 얼려줄까? 생선 조림은?"

"나야 좋지"

'그건 됐고'란 소리 일절 없이 말하는 것마다 환영이다. 이 녀석, 엄마밥이 많이 고픈가 보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지만 신이 난듯한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없던 힘도 불끈 솟아오른다.




다음 주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고 2 딸아이는 수학여행을 떠난다. 남편과 나도 덩달아 가을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다. 모처럼 아이 눈치를 보지 않고 편안하게 둘만의 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다. 이번엔 어디를 가볼까 지도를 펼쳐놓고 계획을 짜는 일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다소 생존게임 같은 여름 캠핑과 달리 가을 여행은 우아하게 차려입고 유유자적 계절을 즐길 수 있어 사뭇 설렌다. 그런데 계속 마음 한편이 살짝 묵직하다.



다가오는 11월 11일, 다들 빼빼로 데이를 제일 먼저 떠올리겠지만 나에겐 조금 다르게 와닿는 날이다. 바로 대한민국 초등 선생님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관문인 임용 시험이 있는 날이다. 그리고 교대 4학년인 큰애는 올해 그 첫 시험에 도전한다.



얼마 전까지 학교 현장에서 연속적으로 일어났던 안타까운 사건들과 아직 풀리지 않는 많은 난제들로 답답함은 여전하다. 철없고 단순하기만 우리 아이가 선생님이 되어 일부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힘들어할 생각을 하면 아무리 다 큰 자식이라도 억장이 무너진다. 나도 같은 부모라고 그들에게 따지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에겐 가진 패가 달리 없다. 이제와 다시 돌아갈 수도 없으니 나중에 어떻게 되든 일단은 그냥 직진할 수밖에. 아이에게 뭐라 다독여야 할지 나 역시 너무나 어려웠던 그 시간들이 빠르게 흘러가고 어느새 시험이 코 앞에 닥쳤다. 엄마라도 자식을 믿어야만 하지만 내 맘 편하자고 기대는 거의 않고 있다. 교사가 꿈이긴 하지만 그리 공부에 뜻이 있는 녀석은 아니다. 고등학생 때까진 나 때문에 겨우 억지로 엉덩이를 의자에 붙였을 뿐이다. 독립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안 봐도 훤하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금전적으로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다. 이제껏 학원 한번 보낸 적 없으나 재수 없이 한 번에 합격해 줬다. 국립이라 등록금도 저렴한 편인데 그나마도 남편 회사에서 거의 다 지원된다. 자취방도 코로나가 한창 극성일 때 구하다 보니 학교 앞 원룸을 거의 반값에 계약할 수 있었다. 집주인이 고맙게도 재계약 때 그 가격으로 계속 있게 해 주었다. 삼수까진 기꺼이 뒷바라지해 줄 수 있다 혼자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궁금해할 사람들에게 미리 입막음으로 그리 말하고 다닌다.



아무리 공부랑 친하지 않은 놈이라도 요즘은 아마 좀 다를 거다. 모두들 열심히 하니 덩달아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같이 임용시험을 치를 여자친구 때문이라도 좀 열심히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럴 때 먹는 거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엄마가 만든 음식을 좋아하는 아이라 반찬이라도 해서 갖다 주면 되는데 차로 4시간가량 운전해야 하는 제법 먼 거리다. 그렇다고 택배로 보내기엔 아직까진 기온이 높아 음식물이 상할 것만 같다. 먹고 싶은 거 그냥 사 먹어라 말하지만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아마 아이도 선뜻 지갑을 열진 못 할 것이다. 용돈을 그리 적게 보내는 건 아니지만 넉넉한 편도 아니다. 부족한 건 간간히 아르바이트로 충당했었는데 올해는 모두 관두고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다. 물론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한 바는 아니지만.



반찬을 만들어 여행 중 잠시 들려 갖다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안 그래도 며칠 전 통화에서 아이는 한번 와서 일부 짐을 집으로 좀 싣고 가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겸사겸사 그 인근 지역도 여행 다니고 계획만 잘 세우면 괜찮은 듯했다. 물론 힘든 건 내 몫이지만. 또다시 몇 날 며칠 장을 보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음식장만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시험 치기 전 마지막으로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다.



한 주 뒤로 다가온 여행의 첫날 아이에게 들리기로 했다. 나름 메뉴를 짜야 하기에 아이랑 통화했더니 음식 먹을 생각에 기분이 좋은지 아이 목소리가 점점 더 밝아졌다. 순간 내 음식을 그리워하는 누군가가 있음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한 지인이 군대에 가 있는 그녀의 아들은 엄마가 만든 음식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며 서운한 듯 얘기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생각한 그 이유가 세상에는 너무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란다. 익히 그녀의 손맛을 잘 알고 있기에 그 아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됐지만 그래도 하나정도는 엄마를 떠올릴 음식이 있으면 좋을 건데 싶어 안타까웠다.



엄마 음식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우리 아이를 위해 우선 쌀쌀해지는 날씨에 속이 든든할 수 있도록 뜨근한 감자탕을 끓이려 한다. 아이 말이 뼈다귀 해장국은 있어도 내가 끓여주는 감자탕 같은 게 그곳엔 없단다. 지금 냉동실 안에는 제일 좋은 감자탕용 등뼈가 두 팩이나 얼려져 있다. 나도 요즘은 가격이 부담스러워 일절 쳐다보지도 않는 알배기용 배추를 사서 김치 겉절이를 하고 총각김치도 담아 갈 요량이다. 일미, 새우, 멸치로 만든 밑반찬 삼총사는 빠지면 섭하다. 돼지고기를 듬뿍 넣어 끓인 된장찌개는 소분해서 얼려 둘 것이고 닭봉조림과 혼자서는 좀체 먹기 힘든 생선 조림, 직접 만든 쯔유로 맛을 낸 계란장도 챙겨 갈 것이다. 여기에 아이가 좋아하는 오트밀 쿠키까지 구워가면 시험 치러 집에 오기 전까지는 실하게 먹을 수 있을게다.



지금은 집밥이 간절하겠지만 그 마음이 사라질 날도 얼마 안 남았다. 겨울 방학이 되면 그곳의 생활을 모두 청산하고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또다시 내가 차려주는 밥을 꼬박꼬박 먹으며 그리 특별하지도 않은 엄마의 집밥을 너무도 당연시 여길 것이다. 지 아빠처럼. 아이가 집에 돌아온다는데 사실 마냥 좋지만은 않다. 생활습관이 나와 너무나도 다른 탓에 다시 같은 지붕에 지낼 생각을 하면 벌써 한숨이 나온다. 아마 아이 역시 그리 무던하지 않은 엄마와 지낼 생각에 갑갑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 간일지라도 따로 떨어져 살아야 서로 좋은 관계도 있다. 시험에 합격하면 따로 방을 내어 줄 생각인데 가급적 그날이 빨리 오길 바랄 뿐이다. 아무래도 이번 여행 중 사찰 몇 군데를 들려 불공을 좀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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