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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니 Nov 16. 2023

울보 엄마

찌질이 울보임이 분명하다. 갱년기가 시작되면 부족해진 여성 호르몬 탓에 점점 남성화가 된다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이 놈의 눈물샘은 마를 기미가 없다. 코끝이 찌릿해지는 게 먼저 신호가 오면 얼른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려야 한다. 만약 그 신호를 무시했다가는 뒤이어 벌어질 추한 사태를 막을 길이 없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쉬이 상처 나고 딱지조차 잘 생기지 않은 여린 곳이 내 마음 곳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제법 단단했던 젊은 시절에 비해 늙고 보잘것 없어진 요즘 그 면적이 오히려 늘어난 것 같기도 하다.



난처하게도 지금 이 순간 교문 앞에 몰려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점점 흐려온다.

'안돼, 절대 안 돼, 주착스럽게 여기서 무슨 눈물을. 꾹 참아 삼켜'

윽박을 질러가며 애써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그런데 가만 보니 앞에 서 있는 또래 아주머니 두 분도 약간 훌쩍이는 분위기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모습에 애써 추스른 마음이 또다시 무너진다. 가방 속 선글라스를 꺼내 쓸까 생각하다 이내 포기한다. 지금 이 정신없는 상황에서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음 아이를 찾지 못할 것만 같다. 품에 끼고 살던 10대 때와 달리 내 곁을 떠나 홀로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20대 아이 모습은 다소 낯설다. 맨 눈으로 똑똑히 교문을 지켜보고 있어야 놓치지 않는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저리 공부랑 적성이 안 맞는 줄 알았다면 일찍 감치 다른 진로를 알아볼 것을 무지한 엄마라서 능력 없는 엄마라서 미안하다. 분명 아이의 여자 친구는 합격할 터인데 혼자 쓴 고배를 맛볼 그 심정이 어떨는지 내 맘이 더 짠하다. 동시에 그럼 좀 더 노력을 할 것이지 고 2인 지 동생보다 열심히 하지 않던 모습에 화가 난다. 저런 놈은 몇 번 떨어져 인생의 쓴 맛을 좀 봐야 한다 생각하지만 아무리 부족한 놈이라도 그래도 내 새끼라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이런저런 생각에 마음이 착잡해져 또 훌쩍이고 서 있다.




오늘 아침 아이가 시험을 치러 집을 나서자마자 나 역시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평소 혼자 즐겨 찾던 숲 속의 한 사찰로 소풍을 떠났다. 아이가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엄마라는 사람이 그 시간에 소풍이나 간다고 손가락질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편이 아이나 나에게 오히려 더 나을 거라 생각했다. 4년 전 아이가 수능을 칠 때였다. 하루 종일 너무 불안하고 떨려 집에서 질질 짜고만 있었다. 그 불안한 기운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되어서일까. 모의고사를 통틀어 한 번도 본 적 없던 역대 최저 점수를  아이는 받아왔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아이와 난 이어져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엄마 마음이 편해야 아이도 안정적으로 시험을 치를 수 있을 것 같아 이번엔 아무 생각 없이 숲길을 거닐며 그냥 저물어 가는 가을을 즐겼다.



그다지 기대를 않고 있어서일까. 사실 수능때와 달리 불안하고 걱정스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이젠 내 품을 거의 벗어난 아이라 약발도 없는 잔소리나 간섭 없이 그저 옆에서 지켜볼 뿐이다. 물론 내 속은 터져나가지만. 한 번에 합격해 주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겠지만 긴 인생에서 어찌 보면 아이를 위해 반대의 결과도 그리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세상은 자기가 공들인 만큼이란 걸 깨우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바랄 뿐이다.



고요한 절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 올 요량이었지만 법당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가족 중 고 3이 없으니 별생각 없었는데 그러고 보니 며칠 있음 수능이다. 이렇게 간절한 부모들 사이에서 사이비 신도인 내 기도를 부처님이 들어주실까. 모든 게 부질없는 것 같아 간단히 인사만 드리고 절을 벗어났다. 덕분에 너무 일찍 시험장소에 도착해 50분은 족히 그 앞에서 기다려야 했다. 아무도 없는 학교 앞에서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 보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렸지만 그리 지루한지도 몰랐다.




드디어 올해 초등 임용고시가 마무리 될 시간이 5분도 채 남지 않게 되자 굳게 닫혀있던 교문이 열린다. 사람들과 차량들이 뒤섞여 교문 밖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한 수험생이 제일 먼저 교문을 향해 경사가 심한 학교에서 내려오자 사람들 시선이 모두 집중된다.

"이제 나온다"

모두들 교문 앞으로 우르르 몰려가 뉘 집 자식인지 쳐다본다. 그리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다 함께 따뜻한 박수와 격려를 보낸다.

"수고했어요"



어떻게든 밖으로 나올려는 눈물과 억지로 집어넣으려는 내 의지와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된다. 내 새끼 남의 새끼 따지지 않고 진심 어린 박수를 건네는 사람들의 모습에 또 코끝이 찌릿해와 하마터면 잡고 있던 정신줄을 놓칠 뻔했다. 저 수험생도 그간 얼마나 고생스럽게 공부했을까. 비록 아이의 경쟁상대지만 다가가 꼭 합격하라고 등이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리자 자그마한 엄마를 행여나 못 보고 아이가 지나칠까 걱정이 돼 학교 안으로 들어가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저 멀리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나를 발견한 아이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오른다. 손을 흔들며 뛰어가 아이의 팔짱을 끼자마자 역시 코가 찡해져 온다.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수고했다'란 말을 건네지만 용케 눈물까진 흘리진 않는다.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그저 아이 팔을 부여잡고 교문밖을 벗어난다.



그리 심각하거나 생각이 많은 아이가 아니다. 날 닮지 않아 너무나 다행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수능 때도 시험을 망쳤지만 별 신경 쓰지 않고 다음날부터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었다. 이번에도 그리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늦은 점심으로 아이는 일식집의 장어 덮밥을 먹기 원했다. 가격에 놀라 숟가락을 다소 무겁게 드는 나와 대조적으로 아이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허둥지둥 먹기 바쁘다. 시험 걱정에 축 쳐져 입맛 없어하는 것보단 어찌 보면 오히려 고맙기도 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네 본다.

"인생 짧지 않아, 한 번에 모든 걸 정하려 하지 마"

차마 밖으로 뱉지는 못하지만 어쩜 아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 인생은 길어. 이번 한 번에 모든 걸 기대하려 하지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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