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Mar 07. 2024

도산대로를 누비는 바바리맨

아마도 자신감과 반비례할 듯한 요란한 튜닝

    심리상담이 종료되고 정신과 약도 끊은 지난해 여름 이후 몇 개월 동안 나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무엇을 보더라도 큰 동요를 느끼지 않고 살아왔지만, 지난 주말에는 못된 말을 하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모종의 이유 때문에 팔자에도 없이 한강 이남, 특히 청담 일대를 방문할 일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도산대로에서 종종 마주치는 어처구니없는 튜닝카들의 존재가 이마의 주름을 깊게 한다. 진심으로 조금 역해서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


    다시 돌이켜도 그렇게 못생긴 차는 처음 봤다. 기묘한 광택이 흐르는 진한 색상의 랩핑을 하고, 어울리지 않게 큼지막한 리어 스포일러를 매단 수입 차량이었다. 그 못생긴 차는 도산대로 일대를 오가는 차와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꼭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듯한 굉음을 내며 도산대로를 한참 동안 빙빙 돌아다녔다. 바바리맨을 본다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했다. 그렇구나. 저 차주의 정신적 음경이 바로 저 튜닝카겠구나. 저 차주의 음경은 얼마나 왜소하기에 고작 저런 촌스럽고 천박하고 흉한 차로 말미암아 자신이 주목받기를 바라는 것일까. 단지 그 차가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못생긴 차를 도산대로에서 마주치기 얼마 전, 중고차 판매업자들이 재미삼아 해 보는 '중고차 월드컵' 클립을 보았다. 양자택일해야 하는 차들 중 튜닝한 쉐보레 말리부가 있었다. 나는 차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을 손봤는지 알아보지 못했고 그냥 평범하게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괴로워하며 "저런 '양카'를 가진 사람은 인간성이 의심되기 때문에 소유하기 꺼려진다"라고 말했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는 알겠다. 다만 남의 속옷 아래쪽 사정을 타의로 들여다보게 된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굳이 허물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