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현 Aug 19. 2024

피로할 정도로 돈 버는 데만 몰두하는 사람들

성실히 돈을 벌고 있지만 '돈미새'가 되고 싶지 않아요

    내가 좋아하는 플랫폼들은 모두 광고와 자기 계발로 오염된 지 오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들려주는 흥미로운 삶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해서 여러 가지 소셜미디어를 두루 이용해 왔다. 글이든, 그림이든, 사진이든, 영상이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은 관계없었다. 일면식도 없는 백인백색의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가족 또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풍경을 포착해 담아냈는지 등을 둘러보고 있자면 내 삶의 결도 더 복잡다단하고 풍성해지는 것만 같았다. 취향이 비슷하거나 전혀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즐겼다는 콘텐츠를 접하고 좋아하는 것들이 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전혀 들어 본 적이 없는 언어로 쓰인 책을 탐독했고, 앞으로도 영영 갈 일이 없을 가능성이 높은 먼 이국의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요즘은 순수하게 그런 재미만을 느끼기가 힘들다. 블로그가 그랬고 그다음이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순이다. 브런치다를 것 없다.


    운영자가 '공구'를 시작하는 순간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우를 취소하더라도, 서비스의 자체 알고리즘이 광고를 쉴 새 없이 노출시키는 데 따른 피로감 때문에 앱 체류 시간을 현저히 줄였다. 또 2010년부터 트위터를 이용했던 사람으로서,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를 인수한 뒤의 변화 중 마음에 안 드는 것을 꼽으라면 한도 끝도 없지만, '파딱'(파란 딱지)으로 불리는 어뷰징 유저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는 것이 가장 거슬린다. '파딱'을 달면 조회수에 따라 수익을 얻을 수 있다나, 뭐라나. 그래서 '파딱'들은 공유가 많이 되는 트윗에 의미 없는 멘션을 달아 조회수를 높이거나, 불특정 다수를 향해 무례한 말을 쏟아내며 이용자들을 자극한다. 실제 사용 후기인 척하며 듣도 보도 못한 제품 광고를 올리거나 쿠팡 구매 링크를 올리는 '업자' 계정은 유저들이 단합해 적발하기가 그나마 쉽지만, '파딱' 계정은 눈에 띄지 않는 개미집이 집안에 숨어 있는 것처럼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결국 지쳐서 트위터에 접속하지 않은 지 꽤 됐다.


    돈은 먹고사는 데 꼭 필요하다. 나도 30대 중반인 지금이 내 생애주기에서 노동소득이 가장 높은 시기라는 점을 인지하고 최대한 근면하게, 또 알뜰하게 살면서 노동이 어려워지는 때를 대비하려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다만 '어떤 행위든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노동은 게으르고 미련한 짓이다', '큰 규모의 자산을 쌓아 타인보다 화려한 생활을 영위하지 않는다면 뒤처지는 것과도 같다'라는 가치관을 강요하는 듯한 주류 흐름이 피곤하기 짝이 없을 뿐이다.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서 어떤 선택을 하든 본인 마음이고 거기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데도, 출퇴근 시간대의 신도림역 환승 구간처럼 하릴없이 폭력적으로 떠밀리곤 한다. (이런 흐름을 적극적으로 조장하며 강의료 명목의 돈을 뽑아 먹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지만, 구체적으로 적지는 않겠다.)


    오랫동안 정신과 진료와 심리상담을 병행한 결과 우울증이 대폭 호전돼 약을 끊은 뒤로는 되도록 현재에 집중하려 한다. 기나긴 우울증의 터널 속에서 끊임없이 고개를 들이밀고 나를 괴롭혔던 "왜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대해 찾은 답이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은 없으니, 태어난 김에 나를 즐겁게 하는 일들을 최대한 많이 찾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람을 쐬기 위해 찾은 동네 뒷산의 젖은 흙바닥에서 자라나는 이름 모를 버섯들,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며 올려다보는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오랫동안 기다렸던 영화 시리즈의 신작, 한 주의 업무를 마치고 찾은 동네 생선구이집에서 맛보는 고등어 한 점과 소주 한 잔, 숨이 가빠질 정도로 운동을 한 뒤 들이키는 미지근한 물. 이런 소박한 것들은 어김없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돈은 소박한 행복을 영위하기 위한, 그리고 그 행복이 최대한 멀리까지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가 삶을 지배하면 불행해진다. 회색 신사들의 꼬임에 빠져 시간저축은행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저축하기 위해 쫓기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나는 성실히 돈을 벌고 있지만 '돈미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원형극장에서 친구들의 이야기에 조용히 기울이는 모모가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