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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Aug 31. 2024

이 핑계로 서로 안부나 물읍시다

경조사가 필요한 이유

    학과 모집 인원이 소수라 막 대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동기들이 20명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반수를 하겠다며 몇 명이 일찌감치 빠져나간 뒤, 학교에 남은 우리들은 PC방에 단체로 모여 수강신청 전쟁을 치르고 전공 수업은 물론 교양 수업까지도 함께 들으며 떼로 몰려다녔다. 운이 좋게도 같은 학번에 CC가 없었기 때문에 결별 후 무리가 여러 개로 쪼개지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친밀하지만 느슨한 관계를 10년 이상 이어 온 지금 우리 중 기혼(예정)자는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자녀가 있는 친구도 세 명뿐이다. 입사 동기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아예 주기적으로 숙소를 잡아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는 자리를 만들 정도로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가운데 결혼을 했거나 할 사람이 한 손에 꼽는다. 그 정도로 내 또래에서 결혼을 택하는 사람이 드물다.


    그 말은 곧 결혼이라는 경사에 있어 품앗이의 의미가 많이 바래거나 사라진 지 오래라는 것이다. 언젠가 돌려받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기꺼이 줄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축의금 액수나 결혼식 참석 여부 등을 두고 미묘한 신경전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연봉 인상률이 물가 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해가 웃도는 해보다 훨씬 많고, '자취생의 희망'이라는 양배추와 방울토마토에 붙은 가격표를 본 뒤 학을 떼고 내려놓는 나날이 익숙해진 데다, 장시간 근로와 쾌적하지 못한 출퇴근길에 시달리는 직장인에게 시간은 금일뿐더러 얇디얇은 통장에서 철마다 훅훅 빠져나가는 축의금과 조의금은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청첩장이 나온 뒤 예비 배우자와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청첩장을 어디까지 돌려야만 하는가?"라는 일생일대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 경우만 이야기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축하를 받고 싶은 사람들에 한해 내게 인생의 큰 변화가 생겼다는 소식을 알리기로 했다. 먼저 취재원의 경우, 일면식도 없던 취재원과의 첫 만남에서 불쑥 청첩장을 들이미는 등 본인의 결혼을 대대적인 수금의 기회로 생각하고 얼굴에 철판을 방공호 두께로 까는 기자들에 대한 괴담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출입처를 옮긴 뒤에도 종종 연락하며 만나기도 하는 사람들에게만 결혼 소식을 직접 알리겠다는 확고한 원칙을 세웠다. 오히려 어려운 것은 친구나 지인들 쪽이었는데, 원체 인간관계를 좁고 깊게 가져가는 편인 데다 그나마도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범위가 점점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만으로 오랜만에 연락했다가 거절당할 수도 있는 가능성을 상정하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구구절절 뚱뚱한 메시지로 결혼 소식을 알렸을 때 곧장 전화해서 아낌없이 축하를 전해 주는 친구가, 아예 자신의 SNS에 "경조사 알림을 거리끼지 말아 달라"라고 못 박아 놓은 친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가지 않던 길을 가기로 한 친구를 온 마음으로 축복하고 싶다는 진심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어제 만난 입사 동기들도 그랬다. 이 중 두 명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연차를 내고 찾아와서 끊임없이 음식 쟁반을 나르고 내 옆을 지키던 예비 배우자와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둘이 결혼할 것 같은데?"라는 예언을 남겼던 주인공들이다. 우리는 퇴근 직후인 오후 6시에 만나 가게가 문을 닫기 직전인 오후 11시 30분까지 장장 5시간 30분을 쉬지도 않고 떠들어댔다. 친구들은 예비 배우자를 만난 뒤로 내가 매우 안정되고 행복해 보이며 '우상향 그래프'를 쭉 그리는 것 같다고, 둘이서 재미있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대학 동기들과는 하반기에 두 번이나 만난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어 일 년에 한두 번 모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연초에 신년회를 핑계로 한 번 만났고, 오랜만에 귀국한 친구를 위해 또 만났고, 내 결혼식을 앞두고 한 번 더 만나기로 했다. 거기서 '정식으로 자리를 마련해 친구의 예비 배우자를 소개받기'라는 친구의 로망(?)을 실현해 주기로 했다. 서울에서 기차로 3시간여를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도시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도, 아이 둘을 키우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친구도 만난다. 내가 부케를 받아 주었던 후배도, 발제 지옥에서 서로를 위로하던 후배도, 사람을 건조기에 넣었다 뺀 수건보다 바싹 마를 정도로 쥐어짜던 부서에서 탈출해 만족스러워하고 있는 선배도 만날 것이다.


    오래전 결혼한 친구 한 명은 "청첩장 모임이라는 건 대체 누가 만든 문화야?"라고 당혹스러워했지만, 기왕 근래 들어 새로운 결혼 문화가 만들어졌다면 나는 이 기회를 '이렇게 된 거 새삼스럽게 안부나 묻는' 기회로 야무지게 써먹으려고 한다. 이런 핑계가 없으면 게으른 나로서는 평소에 마음속에 가지고만 있던 주변인에 대한 감사를 도무지 전할 기회가 없다. 경조사가 필요한 이유란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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