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식으로 영업하셔서 다시는 안 가요
10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단골 미용실이 별안간 몇 달 동안 영업을 하지 않았다. 사유는 '병가'라고만 되어 있었고, 예약을 받지 않는 날이 점점 길어졌다. 원장님이 디스크 쪽에 문제가 있다고 지나가듯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오래 다니다 보니 원장이 반쯤은 지인처럼 여겨져서 걱정을 많이 했다. 다행히 큰일은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원장님은 몸을 잘 추스르고 다시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는 그럭저럭 중요한 행사(결혼식)를 앞두고, 머리 손질을 세상에서 가장 귀찮아하는 내 성격과 새치가 많이 나는 머리카락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원장님께 머리를 맡길 수 있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용실이 영업을 하지 않는 동안, 정수리에서 세를 과시하며 광개토대왕처럼 영토를 넓혀 나가는 새치를 참아내지 못하고 동네 미용실로 간 적이 있었다. 말이 동네 미용실이지, 서울 곳곳에 가맹점을 두고 있는 제법 큰 프랜차이즈 업체의 가맹점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원장님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며 편안하게 몸을 맡기느라 잊고 있던 감각을 오랜만에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담당 디자이너가 "머릿결이 너무 상했는데요? 클리닉을 꼭 하셔야겠는데요?"라고 걱정을 가장한 잔소리를 퍼부으며 영업 활동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게는 옹색한 형광등 불빛 아래서도 반들거리며 광채를 뿜어내도록 아름답게, 또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만들어 훑고 내려갔을 때 걸리는 지점이 하나도 없도록 매끄럽게 머릿결을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들이 많다. 다른 사람이 봤을 때 불쾌할 정도로 지나치게 부스스하거나 기름져 냄새가 나거나 지저분하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그리고 나는 예비 배우자와 교제하기 시작한 뒤로 2년 반가량 쭉 머리를 길렀다. 머리를 오래 기르면 끄트머리가 갈라지는 것은 당연하다. 매일 머리를 감으면서 느끼기 때문에 아주 잘 알고 있다. 어차피 결혼식 날짜가 다가오면 펌도 새로 하고 상한 부분은 잘라내서 잘 다듬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디자이너는 내가 지난 30여 년 간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토록 중요한 일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소홀할 수 있었냐고 책망하듯이, 내가 마치 아주 잘못 살아왔다는 듯이 입을 쉬지 않았다.
"머리가 너무 상했어요, 고객님!"
"저도 알아요……."
"머리가 이렇게 상하면 염색도 잘 안 먹어요!"
"전 그냥 새치만 좀 가리면 되고, 원래 가던 곳에서는 조금 밝게 해주셨……."
"밝게 하면 새치 커버가 안 돼요!"
결국 등쌀에 못 이겨 알아서 해 달라고 했다. 클리닉이든 뭐든 알아서 자알 하시고, 더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으면 했다. 얼굴을 굳히고 미간을 모은 내 눈치를 보며 디자이너가 과자와 음료를 계속 쟁반에 실어 날랐다. 결과적으로 염색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까마귀 깃털 같아서 까무잡잡한 얼굴이 더 탁한 빛을 띠었다. 이미 일어난 일, 바꿀 수 없거나 바꾸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에 계속 기분이 상해 있는 것은 인생을 즐겁게 사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리고 가까스로 단골 미용실 예약을 잡은 날, 재빠르게 원장님의 안부를 물은 뒤 "아니,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자기 말이 다 맞다는 거예요!"를 시작으로 기나긴 고자질을 시작했다.
재미있게도 오랜만에 원장님을 찾아온 고객들 중, 다른 미용실에 다녀온 많은 고객들이 하나같이 나처럼 불쾌한 경험을 하고 원장님께 분통을 터뜨렸다고 했다. 원장님은 가게를 내기 전 미용실 스태프로 일했던 경험을 들려주면서 나를 달랬다. 특히 프랜차이즈 업체일수록 디자이너 개인에게 들어오는 실적 압박이 어마어마한지라, "저분은 내 손님인데 왜 네가 머리를 해 드려?"라는 식으로, 고객 확보 문제를 놓고 디자이너 간에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고 했다.
오늘의 염색은 마음에 쏙 든다. 기분까지 화사해졌다. 이전에 너무 까맣게 되어서 좀 더 밝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얼룩덜룩해진 부분도 깔끔하게 덮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시는 그 미용실에 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원한 아닌 원한을 오래 품고 있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으니 내가 느낀 불쾌함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되, 발길만 끊을 요량이다. 먹고살기 힘들고 뭐 다 알겠는데, 내 인생에서 극히 사소한 부분으로 내 삶의 태도 전반을 공격하며 지갑을 열게 하려는 사람에게 돈을 쓰고 싶지 않다. 음료수를 몇 잔을 갖다 주든 부차적인 문제다. 난 머리를 다듬으러 갔지 음료 시중을 받으러 간 게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힘들게 돈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