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두 번은 못하겠다
사실 친구들로부터 잔뜩 받은 사진을 몇 번이고 돌려 보아도 내가 뭘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아침나절에 잠기운이 조금씩 옅어지는 와중에 잘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꾼 것 같다. 달라진 것도 별로 없다. 배우자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퇴근하고 운동을 다녀와서 샐러드를 퍼먹고 양치를 한 뒤 같은 침대에서 잠들었다가 일어난다. 2년 넘게 나눠 끼었던 은반지 대신 결혼반지를 끼고 다닌다는 점, 프러포즈 선물로 받은 목걸이를 이제는 늘 차고 있다는 점 정도가 다를까. 아, 그리고 '남자친구' 대신 '남편'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손발이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오그라든다는 점도 있다.
아무튼 결혼 준비 기간 동안 친구들에게 늘 "계약금 넣었을 때부터가 결혼식이고 예식 당일은 폐막식이야!"라고 큰소리를 탕탕 치곤 했다. 내가 불안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기 위해 하는 일종의 자기 최면 같은 말이었다. 길어야 30분이면 끝나는 예식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식장 계약금 입금 후 '약혼 관계'에서 의견 조율하는 법을 다시금 익히고 마음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결혼식 이후로 결혼 생활을 얼마나 원만하게 이어갈 수 있는지는 더욱 중요하다. 뭐 그런 것들.
다행히 준비 기간 동안 우리 둘 사이에는 어떤 문제도 없었다. 그러나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례로 배우자가 차를 끌고 출근할 때마다 늘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급기야 일주일 내내 악몽을 꿨다. 주로 눈썹 왁싱이라든지, 손톱 손질이라든지, 예식 날짜를 밭게 앞두고 잡아 둔 예약에 지각하는 내용이었다. 중압감에 못 이겨 매일 10시간 이상 잠만 잤다. 매사 "그럴 수도 있지~"를 입에 달고 살던 배우자도 마찬가지여서, 저 나름대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2년여 동안 별로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신랑이나 신부 중 한쪽이 도망만 안 가면 결혼식은 어떻게든 할 수 있어!"라는 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다행히 당일에는 새벽 4시에 제대로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미리 챙겨 둔 짐꾸러미를 들고 택시를 잡아 탔다. 불야성을 이루는 청담동 골목에서 술에 취한 젊은 남녀들이 흐느적거리는 모습을 차창 너머로 보며(삼촌뻘쯤 되셨을 기사님이 "미친 놈들이에요"라며 혀를 차셔서 좀 웃겼다) 젊어서 기운이 넘친다고 감탄할 여유도 있었다. 동생도 같은 메이크업 샵에서 단장을 했기 때문에, 무거운 드레스에 감싸여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셋이 수다를 떨며 긴장을 다 풀었다고 생각했다. 미리 불러 둔 밴이 잘못된 주소지에 도착했다가 한참을 돌아서 오고, 남산터널 1차선에서 접촉사고가 나는 바람에 차가 막히고, 오전 9시에 신부대기실에 도착한다던 부케가 30분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사소한 일들이었다.
그다음에는 어땠더라. 열의가 넘치는 사진작가님에게 이끌려 식장 이곳저곳을 누볐던 기억들이 어렴풋하게 난다. 축사를 기꺼이 맡아 준 친구가 신부대기실에 1등으로 도착해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물을 쏟을 뻔하는 위기를 맞았지만 어찌어찌 넘겼고, 소중한 주말 이른 시간에 채비를 마치고 축하하러 찾아와 준 내 손님들을 맞으며 '인간 판넬' 노릇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먼저 결혼을 한 친구의 말처럼 힘이 솟기까지 했다. 문제는 예식 시작 10분 전에 신부대기실 문이 닫히고 헬퍼 선생님이 식장 안으로 먼저 들어갔을 때부터였다.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헬퍼 선생님의 뒤에 대고 다급하게 물었다.
"신부는 리허설을 따로 안 하는 거예요?"
"그래서 신부님한테 아까 미리 설명을 드린 거예요. 그렇게만 하시면 돼요!"
진행 상황을 살피는 컨시어지 직원 1명이 있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혼자가 아니었으되, 그때는 꼭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널따란 문에 가려 뭉개진 사회자의 안내 멘트, 화촉 점화 음악, 신랑 입장곡이 연달아 들려왔다. 부케와 치맛자락을 쥔 손바닥에서 식은땀이 났다. 뭘 하라고 했더라? 정수리만 보이면 안 되니까 고개를 숙이면 안 되고, 드레스를 밟을 수도 있으니까 뻥뻥 차면서 걸어야 하고, 그리고 또……. 그러다가 혼백을 반쯤 신부대기실에 남겨 놓은 기분으로 입장했다. 나중에 엄마는 내 손을 잡은 순간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것이 느껴져서, 오히려 당신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힐 수 있다고 말하며 웃었다.
식장에 넘기기 위해 미리 축사를 받아서 예습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친구와 눈을 마주치고 첫 문장이 귀에 꽂히자마자 눈물을 쏟고, 혼주 인사를 할 때도 거의 오열하다시피 해서 '사연 있는 신부'가 되고 말았다는 사소한 사고가 있기는 했다.(손님들이 낄낄대며 보내 준 동영상과 사진을 보고 혀를 깨물고 싶었다.) 전날 엄마와 통화하며 "눈 마주치면 안 돼! 안 울고 후딱 끝내는 거야!"라고 몇 번을 했던 다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부부 하객이 워낙 많아서 친구와 회사 동료 사진은 두 번을 나눠 찍었다. 식사도 많이들 하고 간 덕분에 좀 편한 옷을 입고 편한 신발을 신은 채로 인사도 할 수 있었다. 막판에는 11㎝짜리 하이힐에 갇힌 발이 비명을 질러 대는 통에 옷을 갈아입으러 맨발로 갔다고 푸념하며 "사람은 '유사 신발'이 아니라 '진짜 신발'을 신어야 해!"라고 실없는 농담도 나눴다.
어쨌든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됐다. 음악이 잘못 나온다거나, 아예 안 나온다거나, 드레스 자락을 밟고 넘어진다거나, 어쨌든 내가 상상할 수 있던 종류의 사고들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나긴 결혼식의 폐막식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랑도, 축하도 넘치게 받았다.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언젠가 적절한 순간에 나도 나누어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