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참석해 준 지인들과 만나 회포를 실컷 풀었다. 항공성 중이염이라는 사치스러운 병 때문에 처방받은 약을 먹고 있어서 술은 거의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딱 좋은 시간에 2차까지 끝내고 버스를 곧장 잡아타서 기분 좋게 귀가했다. 고기 냄새를 빼려고 머리를 박박 감은 뒤 말리고 있는데, 무슨 알람이라도 켜 놓은 것처럼 휴대폰 상단바에 푸시 알림이 깜박대다 곧 사라지길 반복했다. '체포', '탄핵' 뭐 이런 종류의 단어가 뒤숭숭하게 오고 갔다. 반쯤 말린 머리를 흩어 놓고 상단바를 쭉 내렸다가 잠시 판단력이 마비되는 기분에 휩싸였다. 상황 파악을 하는 데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보도전문채널에서 긴급 속보를 전하는 앵커와 기자도 간간이 말을 더듬는 것이, 이 당황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용산에 출입하는 친구가 보내 준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 3항("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을 읽고 나서야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되는 대로 취재원들에게 전화를 돌리긴 했는데, 사무적인 목소리를 꾸며낼 여유도 없었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출입처들마다 비상 소집령을 내렸고, 우리 부서는 물론 다른 부서에서도 발생 대응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용의 진위를 알 수 없는 찌라시와 사진들이 난무했다. 국방부 출입기자들이 기자실에서 쫓겨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가 곧 정정됐다.
억지로 누워서도 잠이 오질 않아서, 음량을 가장 작게 줄여 놓고 국회 본회의장 생중계를 봤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마자 긴장이 풀려서 잠들었다. 밤새 쌓인 속보 알람을 보니 촌극 같은 비상계엄 사태가 어떻게든 마무리가 된 것 같기는 했다. 이걸 두고 시스템이 잘 작동한 사례라고 보아야 하는 건지, 기분이 애매해졌다. 그런 숨 가쁜 155분을 지나쳐 온 오늘 아침에도 출근길에 마주친 사람들은 평소처럼 지하철에 실려 한강다리를 건넜고,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에 들러서 커피를 샀다. 별세계에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면서도, 평범한 일상이 사무치게 소중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