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충이는 그냥 솔잎만 씹다 갈래요
언급하기 조심스러워서 실명이나 사건 내용을 밝히지는 않겠는데, 기자 출신인 사기업 PR 담당 임원들의 장대한 삽질이 뒤늦게 양지에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란하기 이를 데 없다. 왠지 익숙한 이름이 자꾸 들려오기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카카오톡 친구 목록에 이름 석 자를 검색해 보았더니, 이름 옆의 괄호에 매체명과 출입처가 딸려 나오는 것을 보고 눈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선배들의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던 시절에 밥과 커피를 같이 먹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연차 차이가 많이 나서 개인적으로 가깝게 지내지 못했고, 출입처를 옮기고 나서는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았고, '기렉시트'를 해서 사기업에 새로 몸담게 되었는지도 까맣게 몰라서 더 놀랐다.
요즘도 간간이 어느 매체의 누가 어떤 기업의 홍보·대관 업무 담당자로 적을 옮겼다는 '받은글'이 종종 돌기는 하는데, 지금보다는 그나마 경기 침체 국면이 덜했던 몇 년 전에는 거의 눈만 감았다 뜨면 전직 소식이 날아들 정도로 이동이 활발했다. 대체로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축적해 온 차장급 이상의 이동이 많았지만, 5년 차 언저리의 주니어들도 간간이 이름을 올렸다. 그런 소식이 전해지고 나면 어떤 종류의 패배감 내지 박탈감 같은 것들이 기자 사회를 가볍게 휩쓸고 갔다가 곧 가라앉고는 했다. 저연차 기자들을 중심으로 널리 공유되고 있는 업계에 대한 환멸 때문일 것이다. 기자 중심의 조직 문화, 변화를 두려워하는 업계 전반의 보수성, 무능력한 데스크, 경영을 모르는 경영진, 비슷한 연차의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과 비교해 낮은 보수, 기타 등등. 이제는 뭐 말하기도 입이 아프다.
나 같은 경우에는 산업부 일이 도통 맞지 않는 쪽이었다. 눈물과 정신과 약을 한꺼번에 털어 넣어 가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던 시절에는 아침저녁으로 구인구직 사이트를 이 잡듯 뒤지며 "이 바닥 뜨고 만다!"라고 이를 갈곤 했는데, 도망치듯 부서를 옮긴 뒤로는 그 짓도 더는 하지 않게 되었다. 내 영혼을 갉아먹는 일에서 벗어난 덕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계기들도 있다. 가뭄에 콩 나듯 나한테까지 오퍼가 들어오거나 하루가 멀다 하고 구인구직 사이트에 채용공고를 띄우던 회사들이 이런저런 설화에 휩싸이는 것을 볼 때였던가. 아니면 경영 리스크와 오너 리스크의 폭풍우 속에서도 꿋꿋하게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착실히 승진한 취재원이 여전히 폭풍의 위험반원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안쓰러운 모습(절대로 비꼬는 것이 아니다)을 다시금 보게 되었을 때였던가.
입사 이래로, 어쩌면 그전부터 언론계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경고가 멈춘 적은 없었고, "이 일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머지않은 날에 자유로운 평기자의 삶에서 타의로 벗어나 차장을 달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온다. 산업과 언론의 생리를 이해하고 있는 기자 출신 홍보 업무 담당자에 대한 수요가 아주 끊기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비교적 가망 있는 탈출구로 보이는 전직에의 유혹도 아마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처럼 세상 모든 것이 불만스러워서 기자를 하겠답시고 설쳐 댔던 부류의 인간이 사기업으로 옮겨 가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한때는 나나 다른 기자 동료들이 그랬듯 빈틈을 찾아 벌리고 발제를 고민하고 송고된 기사를 거듭 읽어 보며 뿌듯함을 번갈아 느꼈을 사람들이, 속된 말로 '짜치는' 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니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