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스타 정치인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숨 쉬듯 내뱉는 반사회적인 농담에 익숙한 내 친구들은 무슨 흰소리를 하냐고 할 수도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나는 좀 보수적인 사람이다. 잘 작동되는 단단한 시스템과 각종 매뉴얼을 어느 정도 신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관료제라든지, 공화제라든지, 뭐 그런 것들. 특히 2016년의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이런 가치관이 좀 더 굳건해졌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와중에도 나라가 어떻게든 그럭저럭 굴러가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어떤 비상 상황이 닥치더라도 어떻게든 현상유지 내지는 악화 방지를 할 수 있는 시스템과 매뉴얼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도 비슷한 취지의 교훈을 얻었다. 다음날로 예정된 본회의를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국회의원들(여당 제외)이 너나 할 것 없이 국회 담장을 넘어 본회의장으로 모여든 뒤, 피가 바짝바짝 말라 가는 시민들이 '왜 이렇게 느긋하냐'며 아우성을 치고 계엄군이 본청 기물을 다 때려 부수는 와중에도 절차에 맞게 결의안을 상정해 표결까지 진행함으로써 (누구와는 다르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모습을 본 덕이다.
반대로 말하면, 뛰어난 능력을 가진 개인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는다. 과거 다수의 왕정제 국가에서는 군주와 그 핏줄들의 자질에 따라 나라 전체가 출렁이곤 했다. 그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자유 의지를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그 시스템을 구성하고 움직이는 것은 주권자 개개인의 의지와 합의다. 공화주의라는 개념을 시각화한다면, 그 늦은 밤 혼란스럽던 와중에도 곧장 서여의도로 달려와 담장을 넘으려는 국회의원의 발 밑을 받쳐 주던 시민들의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백마 타고 온 초인의 카리스마에 기대야 할 때가 분명히 있기는 하겠지만, 그 역시 어디까지나 주권자의 대변인이어야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탄핵 정국 직후 치러진 조기 대선의 유세 현장이 흡사 종교집회 내지 대관식처럼 연출되는 광경을 보고 할 말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그 자리에 모였던 사람들 중 다수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의 지지자이기 이전에 문자메시지 폭탄, 촛불집회 등으로써 정치적 주체가 된 경험을 했을 텐데, 그와는 정반대 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야당 당 대표가 휴대폰으로 라이브를 진행하며 한 손으로 국회의사당 담장을 뛰어넘는 장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열광하는 어떤 사람들을 보면서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 정치권에서 영향력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의 팬덤을 가지는 것은 이제 필수적이라고는 하지만, 역시 팬덤 정치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