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먹고 잘 자는지 살펴 주세요
최근 배우자가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에 꽂혀서 매우 열심히 보고 있다. 단행본이 완결되었을 때 끝까지 다 보긴 했는데, 그것도 몇 년 전의 일이다 보니 인상적이었던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내용이 머릿속에서 대강 다 휘발되다시피 해서 옆에서 같이 본다.
며칠 전에 부엌에서 양배추베이컨찜을 만들겠다고 냄비에 재료를 겹쳐 쌓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사부작대던 배우자가 〈귀멸의 칼날〉 이야기를 꺼냈다. 정확히는 초반부터 비중 있게 등장하는 어떤 주요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토미오카 기유'라는 캐릭터로, 작중에서 대체로 사교성이 좀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주어진 일을 잘하고, 어쨌든 언뜻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인해 △등장인물들이 모종의 목적을 위해 훈련 중일 때 전혀 참여하지 않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줄창 잠만 자는 장면이 나온다. 다른 등장인물로부터 "너 그러면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해……." 같은 느낌의 핀잔을 듣기도 하는데, 배우자가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심각하게 말했다.
"어, 이거 우울증인데? 뭐라고 할 게 아니라 쟤 얼른 데려가서 치료받게 해야 하는데?"
이걸 '신체화 증상'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내 경우에는 잠을 지나치게 오래 자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무기력감을 크게 느꼈고, 허기를 전혀 느끼지 못해서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업무에서 생산적인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주어진 일은 어떻게든 했기 때문에, 초기에는 소수의 지인을 제외하면 내가 우울증을 앓는 것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저 말을 듣고 최근 반년 사이에 가장 크게 웃기도 했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다시금 적어 둘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주변에 어딘지 이상한 기색을 보이는 친지가 있다면 모두 눈여겨보았으면 좋겠다. 특히 잘 먹고 잘 자는지 살피는 것이 환자 당사자에게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