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행한 오르페우스를 향해 에우리디케가 외친다. “오르페우스, 어떤 어리석음을 저질러 나를 잃게 되었나요? 어떤 어리석음을 저질러 당신을 잃게 되었나요? 두 번째로 나는 저 아래로 돌아갑니다. 두 번째로 잠이 내 눈을 가리고 무한한 어둠 속으로 나를 데려갑니다.”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대기 속으로 연기가 사라지듯 갑자기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ex oculis subito).
에우리디케가 두 번 죽고 난 뒤, 오르페우스는 “근심과 마음의 괴로움과 눈물을” 자신의 양식으로 취하며 “여자와의 사랑은 일절 피했다. 하지만 많은 여인이 그와 결합하기를 열망했고, 많은 여인이 퇴짜를 맞고 비탄에 잠겼다.”
오비디우스가 전한다. 어느 날, “저것 봐요. 저기 우리를 경멸하는 자가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디오니소스의 여인들은 오르페우스를 향한 공격을 시작한다. “앞뒤를 헤아리지 않는 공격이 더욱 거세지며 절제가 사라지자, 광기 어린 복수의 여신이 그곳을 지배했다. 그런데도 그들의 모든 무기가 그의 노래의 마력 앞에 무력해졌을 것이나, 엄청난 소음”과 “피리 소리와, 북소리와, 박수 소리와” 여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키타라 소리를 압도해 버렸다. 그리하여 결국 더 이상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인의 피로 돌멩이들이 붉게 물들었다.”(『변신이야기』, XI, 13-19)
왜 디오니소스의 여인들은 오르페우스에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그를 참혹하게 죽일 수밖에 없었는가? 이는 단순히 자신들의 사랑이 거부당했다는 가냘픈 복수심에 기인하는 것은 아닐 터다.
키냐르의 『음악혐오』에서 우리는 “음악만이 찢어진다”는 의미심장한 진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한편으로 오르페우스의 참혹한 죽음 그 자체를 뜻한다. 이는 오르페우스의 참혹한 죽음은 음향의 해체 과정과 공명한다. 헤겔은 음악을 공간 일반이 내적으로 충만한 시간의 점으로 이행한 결과라고 정의한다. 음향은 가시적인 요소에서 질료를 제거해 가청적인 요소로 변화시킨 결과이다.(『미학강의 I』) 가청적인 음은 공기를 통해 흘러가고 확산된다. 확산되는 음향은 벽과 사물을 부딪치며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사라진다. 이러한 과정의 유한한 반복이 음악이고, 음악이 현상하는 과정에서 잔향(echo)이 발생한다.
잔향은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가 전한다. 오르페우스의 뤼라와 해체된 “그의 머리는 소용돌이치는 강물 한가운데로 굴러 떨어진다. 그때 그의 입은 숨을 거두면서도 여전히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 두 입술이 움직여 “에우리디케!”를 반복한다. 그러자 강을 따라 내려가며 강기슭들이 줄줄이 “에우리디케!”를 되읊는다(『농경시』, IV, 465). ‘되돌아 옴’은 죽음으로 인한 미련과 후회로 점철된 ‘되돌아 봄’의 메타포가 된다.
다른 한편으로 음악이 디오니소스와 오르페우스의 영역으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디오니소스의 여인들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 춤이다. 그렇다면 춤이란 무엇인가? 참을 수 없이 일어서는 욕망이다.” 그런데 오르페우스의 음악은 양상이 다르다. 그의 음악은 “아르고 호의 원정에서 세이렌들의 노래를 노래로 물리친 것이고, 폭풍을 잠재우는” 음악이다. 전자가 욕망을 고조시키는 음악이라면, 후다는 욕망을 해소하는 음악이다.
그래서 디오니소스가 여인들에게 내린 징벌은 더욱 가혹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추종자들에 의한 오르페우스의 죽음을 비통해하며, “모든 여인을 즉시 나무뿌리를 꼬아 숲 속에다 묶고는, 그들의 발가락”을 “단단한 대지에 박아버렸다.” 그렇게 가해자들은 “참나무”가 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근대 이후 콘서트홀 객석에 앉은 관객의 메타포다. 키냐르가 말한다. “[오르페우스로 대변되는] 기악으로 변해버린 서양 음악은 옛날의 핵에 속하는 시원의 춤을 희생시켰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트랜스(마치 최면에 걸린 것 같은 몽환 상태)의 포기”이다. 이를 통해 “음악의 기보가 허용되었고, ’앉아서 연주’가 가능해졌다. 뿐만 아니라 특히 이해할 수 없는 이른바 ‘몽환 상태’의 억제된 근육, 즉 놀랍게도 음악을 앉아서 청취’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을 듣는 우리는 디오니소스의 여인들이 됨으로써 음악을 통해 찢어진다. 춤을 추든지, 참나무가 되든지.
孫潤祭, 2023. 10.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