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병』에 덧붙임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쓴 소설 《죽음의 병》의 첫 장면은 주인공인 ‘당신’이 한 ‘여자’와 성적인 계약이 체결되는 것을 비춘다.
“당신은 이렇게 말했으리라: 며칠 동안 매일 밤 와야 할 겁니다.
(···)
여자가 묻는다 : 무얼 시도하려는 건가요?
당신이 말한다 : 사랑하기.”
“여자는 매일 오리라, 여자는 매일 온다.” ‘당신’은 그녀와 매일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곧 ‘여자’는 ‘당신’에게서 이상한 점을 눈치챈다. 이상한 점이란 ‘당신’이 ‘죽음의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여자에게 묻는다: 죽음의 병이 어떤 점에서 치명적이지요?
여자가 대답한다: 이 병이 죽음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병에 걸린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요. 또한 죽기 전에 삶을 가져보지 못한 채, 어떤 삶도 없이 죽는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살마이 죽으리라는 점에서요.”
키냐르가 말한다. “쾌락은 우리에게서 욕망을 제거한다. 쾌락은 욕망을 위협한다.” 수컷이 교미 후에 빠지는 불응기(요즘 말로 ‘현자타임’)이 이를 예증한다. 즉 쾌락은 수축하는 경향이다. 욕망이 제거된 채 쾌락만을 추구하는 ‘당신’에게
“여자가 말한다 : 모든 종류의 법규를, 도덕의 온갖 지배를 거스르며, 연인을 죽이려 하는, 오로지 당신 혼자만을 위해, 연인을 취하려 하는, 연인을 훔치려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는 그런 욕망, 당신은 그걸 알지 못해요, 당신은 단 한 번도 이런 욕망을 가진 적이 없지요?
당신이 말한다 : 단 한 번도 없어요.
여자는 당신을 바라본다 : 신기하네요, 죽은 사람은.”
뒤라스는 『이게 다예요』에서 ‘죽음의 병’에 걸린 남자(‘당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누군가? 그는 어떻게 그렇게 됐을까? 야윔에 대해서 써야지. 그 남자의 야윔에서 출발해.”
루크레티우스에 따르면 세상이란 바닷물이 서서히 물러갈 때 파도가 남겨놓는 흔적들이고, 그 파도의 이름은 voluptas(쾌락)이다. 그래서
“당신은 검은 바다를 마주한 테라스로 되돌아간다. 당신 안에는 당신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는 흐느낌이 있다. 마치 당신 외부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것은 당신 주위에 단단히 고여 있어, 당신이 울음을 터트릴 수 있도록 당신과 합쳐질 수가 없다.”
‘여자’가 말하는 “죽은 사람”은 타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리에 널브러진 채로 있는 마약 중독자들이야말로 바닷물(쾌락)을 마시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들에게 있어 삶을 이끌어갈 욕망은 부재한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갈증을 그들은 쾌락(바닷물)으로 대신 해소해보려 하지만, 갈증은 더 심해질 따름이며 수분이 빠져나가는 육신은 더욱 야위어가는 것일 테다.
‘야윔’이 인격화된 ‘당신’에게
“여자가 말한다: 날이 밝았어요, 당신만 빼놓고, 이제 곧 모든 것이 시작되겠지요, 당신, 당신은 절대로 시작되지 않아요.”
‘여자’가 ‘당신’에게 하는 이 말은, 항적 없는 파도(쾌락)를 가리킬 것이다. 파도는 어디로부터 밀려오는지 알 수 없을 따름이므로 시작될 수조차 없다. 파도는 그저 해안으로 떠밀려오고, 다시 쓸려갈 따름이다.
그러나 반대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생명이 움직이기 위해 물을 필요로 하는 것과 같다. 욕망은 확장하는 경향이며, 생명체를 ‘움직이게’ 한다. 욕망(Drang)은 목적지로 당신을 몰아간다(drive). 즉, ‘시작’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키냐르는 이렇게 말한다. “욕망은 권태, 탈진, 포만, 잠들기, 혐오, 물렁물렁함, 무정형(amorpheia)의 반대이다.”
孫潤祭, 2023. 11.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