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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윤제 Nov 11. 2023

《계류繫留》

: 영화 <헤어질 결심>(2022)에 덧붙임. 스포주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1)은 ‘계류繫留’를 표현한 영화이지 않을까. 계류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1. 일정한 곳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밧줄 같은 것으로 붙잡아 매어 놓음.

2. 어떤 사건이 해결되지 않고 걸려 있음.

3. 한 화음으로부터 다른 화음으로 옮길 때, 그 가운데 어느 한 성음 또는 몇 개의 성음이 다른 화음으로 늦게 들어가서 불협화음을 이루는 일.


영화의 플롯은 두 건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우연인지, 아니면 운명의 장난인지, 피해자는 모두 한 여인의 남편이다. 영화의 프로타고니스트인 해준(박해일 역)은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경찰이며, 서래(탕웨이 역)는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다.


영화는 시종일관 ‘안개’를 드리운다. 영화의 전반부는 정훈희의 「안개」를, 영화의 후반부는 무대가 아예 안개가 자주 드리우는 이포가 배경이다. 해준은 ‘안개 낀 바다’를 좋아한다. 해군 출신인 그는 “부산 가도 바다, 이포 와도 바다 ······ 나는야 바다의 사나이”다.


‘지표면 가까이에 아주 작은 물방울이 부옇게 떠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인 ‘안개’는 ‘계류’를 상징하며, 수사를 진행하는 해준의 시야 앞에 드리운다. 그리고 이 드리워진 ‘안개’가 걷힐 때, 영화의 전개는 극적으로 흘러간다.


서래의 간병을 받으며 스마트폰을 통해 정훈희의 「안개」를 즐겨 듣던

“할머니, 휴대전화를 들고 —

시래야 ······ 시래야! 얘, 노래 좀 틀어 줘. 그 ······ 누구냐, 그 누구의 안개.
(반응 없자 마구 아무 데나 누르며)

얘가 요새 말을 안 들어.”


이때가 처음으로 안개가 걷히는 순간, 즉 해준이 서래를 기도수의 살인자로 의심하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그는 서래의 알리바이를 되짚기 위해 구소산을 오른다.


두 번째로 안개가 걷히는 순간은 호미산이다.

해준은 운전하며 호미산으로 향한다. 통화 중인 휴대폰 너머로 서래가 말한다.

“졸지 말아요 ······ 조금만 더 참아요.

여기는 안개가 없어요.”


(안개가 걷힌) 호미산에 도착한 해준은 서래에게 고백한다.

“내가 서래 씨 왜 좋아하는지 궁금하죠? 아니, 안 궁금하댔나?

그래도 말하겠습니다.

서래씨는요 몸이 꼿꼿해요,

긴장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똑바른 사람은 드물어요.

난 그게 서래씨에 관해 많은 걸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래가 말한다.

“난 해준 씨의 미결 사건이 되고 싶어서 이포에 갔나 봐요.

벽에 내 사진 붙여 놓고, 잠도 못 자고 오로지 내 생각만 해요.”


해준의 미결 사건이 된 서래는 ‘계류’이다.


영화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말러 제5번 교향곡 4악장은 ‘계류’를 알리는 주요 모티브가 된다. 첫번째 ‘안개’가 걷힌 후 서래의 알리바이를 확인하기 위해 구소산을 오르는 해준은 기도수가 만든 영상을 확인한다. 기도수는 구소산을 오르는 루트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말러 오 번을 들으면서 출발하면, 사 악장 끝날 때쯤 도착합니다. 정상에 앉아 오 악장까지 듣고 하산하면 완벽하죠.”


말러의 제5번 교향곡 4악장의 주제 선율은 계류음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악장의 끝은 아타카 즉, 그다음 악장의 시작과 연결되어 있다. 4-3 계류음이 해결되는 시점에서, F장조의 근음인 F는 사라지고 A만 남는다. 남아 있는 A는 전조를 위한 공통음이 되어 5악장의 시작이 된다. — 영화의 엔딩장면에서, 바다에 가라앉은 구덩이에서 사라진 서래와 그녀를 찾는 해준의 다급한 모습이 음악과 ‘디죨브(앞의 장면이 사라지고 있는 동안 새 장면이 페이드인 되는 것)’되지 않는가.


“(구덩이에서와 똑같이) 양팔로 무릎을 무릎을 안고 소파에 앉은 서래, 스마트폰에서 재생되는 녹음 파일을 듣는다.


해준: 내가 품위 있댔죠? 품위가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요? 자부심이에요. 난  자부심 있는 경찰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에 미쳐서 수사를 망쳤죠. 나는요 ······ 완전히 붕괴됐어요.

[서래는] 재빨리 듣기 싫은 부분 건너뛰고 듣고 싶은 부분으로 바로 간다. 고개 푹 숙이고 눈은 감고 전화귀는 귀에 바짝 대고 듣는다.


해준: (···) 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뜨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


하지만 영화는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에 ‘계류’되어 있다. 5악장은 시작되지 못할 것이다. 해준과 서래의 사랑이 결국 계류되어 이뤄지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계류음(강박에 ‘걸려 있는’ 불협화음)은 협화음으로 해결되어야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협화음이 되지 못한다.


서래가 말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나는 순간 내 사랑이 시작됐죠.”


영화의 마지막은 “해 지는 바다에 내려앉는 안개가 멀어지는 해준의 뒷모습을 감싼다. 트윈폴리오의 「안개」 시작.”


끝.


孫潤祭, 2023.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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