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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샘 May 20. 2024

우리들의 인형극 1

종이봉투가 쏘아올린 우리들의 인형극

“내가 이거 하면 네가 붙여줘!” 한 아이의 제안에 쾌활한 답변이 들려온다. 이쪽 저쪽에서 ”꺄르르르 꺄르르르“ 클레이로 캐릭터를 만들다가 무엇이 웃긴지 단어 하나에도 재미나한다. 진지하게 수를 놓으며 음을 듣고 노래를 만드는 친구도 있다. 며칠 동안 인형극에 빠진 우리반 풍경이다.


 아이들이 뒤집어 쓰면 허리정도까지 오는 큰 종이봉투를 친구가 가져왔다. 재활용품을 담아온 봉투였는데 우리에게는 이 봉투가 너무 재미난 놀잇감이 되었다.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가면처럼 행동하거나 친구를 잡으러가며 놀기도하고, 종이봉투에 마법을 걸어서 내가 건 마법을 친구들이 맞히는 놀이를 하기도 했다. 이럴 때면 종이봉투는 동굴도 되었다가 김밥도 되었다가 접어서 개고 있는 수건도 되었다. 종이봉투가 조금 너덜 해질 즈음 ”여기에 구멍 좀 뚫어주세요! 구멍 뚫으면 인형극 할 수 있어요!“ 눈을 반짝이며 은채가 나에게 말했다. 말을 듣고 은채 눈에 반사된 반짝이는 빛이 나에게도 들어와 내 눈도 반짝였다. ”꺄아! 좋아!“ 신나서 종이봉투를 자르며 ”어느정도? 이정도? 크기는 얼마만해야해? 너가 딱 멈추라고 하면 선생님이 멈출게“ 자르고 나니 아직은 너덜해보이긴 하지만 힘이 있는 인형극장이 생겼다. 그러고 나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글씨를 써주고, 블럭을 조립하고, 정리하고, 아이들이 만든 걸 붙여주었다. 바깥놀이를 나가볼까 하는 중 ”바깥놀이터에 인형극 들고가서 해도 돼요? 토끼와 거북이 인형극 할거에요“ 하는 은채의 눈이 아까 보다 더 반짝반짝 거렸지만 이번에는 조금 애가 탔다. ”당연하지“ 나의 속시원한 말에 은채는 싱긋 미소만 지었다. ’토끼와 거북이? 아이들이 다 아는 이야기니까 더 재미나겠네‘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바깥놀이에서 한 <토끼와 거북이> 인형극은 대성공했다. 인형극을 한다는 안내 소리를 듣자마자 몰려온 친구들에, “재밌다~” 하고 이야기하며 집중하는 아이들에 막대를 붙인 조그마한 토끼와 거북이가 토끼풀만큼 크게 보였다. 이게 시작이었다. 우리의 인형극 시작.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모습은 나를 떠나지 않았다. 그치만 “종이봉투가 또 없는데 어떻게 해요?” 라는 이야기가 나올까 두려웠다. 나는 종이봉투가 없어도 인형극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막대를 붙여서 책처럼 펼친 종이 위에서 하는 인형극을 보면서 아이들은 “이거는 책에서 인형극을 하네요?” “나도 해볼래요!” “빨대주세요!” 하고 요청했다. 아이들의 관심이 더욱 더 반가운 나는 자유롭게 인형극 장소를 찾을 수 있는 구멍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책상을 뒤집어 다리를 빼고, 다리를 그대로 둔채로 큰 블럭을 가져와 고정시키기도 하고, 종이로 텔레비전처럼 인형극장을 만들어 그 속에 막대를 집어넣어 인형극을 펼치는 아이도 있었다. 다양한 유형의 인형극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극장 하나 하나가 모두 아이들의 개성을 담고 있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한명 한명 하는 인형극에 아이들이 익숙해졌을무렵, 나는 하나의 인형극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를 수도 있어서 커다란 순무 책도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특성과 성격과 기질과 적성대로 인형극장을 만드는 자신만의 역할을 찾아갔다. “인형극장을 만들래요! 큰 블럭으로요!” “건축을 하고 싶구나? 좋아 너희는 건축!“ ”선생님 다른 사람들이 올 수 있게 화살표를 붙여야 해요. 화살표를 보고 올 수 있잖아요“ ”오케이 그럼 선생님이 종이를 줄게! 테이프도 여기있어!“ ”야 얘들아 근데 영화볼 때 팝콘 먹지않아? 팝콘 먹으면 재밌잖아. 우리 팝콘 만들자!“ (내가 이야기할 것 없이 자신들이 팝콘을 만들어서 가게를 차렸다) “선생님 이 노래 어때요? 속도를 빠르게 해볼까?” 송메이커로 노래를 작곡하던 아이들이 인형극 배경음악을 만들었다. “옷 디자인 하는 사람도 필요할 것 같아요!” “나는 여기 나오는 토끼 만들래!” “소리 내는 사람이 필요해요! 인형 소리요!(성우 역할을 아는 친구)” “냥냥냥! 여기오라냥!!”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하고 무대에서 소리내어 연기하는 배우들도 있다.

이 모든 역할은 하나가 되어 유일무이한 인형극을 만들었다. 아이들을 보고 듣고 지원하고 함께 하며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너무 잘해서. 팀마다, 개별 아이들마다 요구사항도 있고 건의도 있고 항의도 있어 분신술을 쓰고 싶은 나였지만 이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며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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