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그 누구도 자신의 털북숭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되는 원인에 대해 미리 알 수 없어요. 하물며 그 이유가 바로 악성 종양 때문일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더욱 없죠. 하지만 나이 든 강아지에서 무려 50%, 그리고 고양이에서는 40%가 종양으로 인해 사망하게 돼요. 그만큼 종양은 많은 아이들에게서 발생하는 질환이에요.
털북숭이에게 종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여러 검사를 통해 종양의 종류와 전이 여부를 평가해요. 그래야만 우리에게 어떤 치료 선택권이 주어지는지, 아이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어요. 간혹 수술만이 유일한 종양 치료 방법이라고 알고 계시는 분들이 계세요. 다행히수의학의 발달로 수술뿐만 아니라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중재 요법 그리고 면역요법도 가능해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털북숭이는 많지 않아요.
사람이 암에 걸릴 경우 이를 치료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요. 그 이유는 너무나 잘 아시겠죠. 나 스스로가 더 건강하고 오래 살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털북숭이는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어요. 게다가 우리는 그들의 생각도 우리와 같은 지 알 수 없죠.결국우리가 털북숭이의 치료 여부를 결정하게 되지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암치료를 포기해요.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우선 전문적인 암치료를 받을 수 있는 동물 병원의 수가 전국에서 손에 꼽을 수 있을 만큼 적어요. 항암 치료를 하는 병원은 그나마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이지만 방사선 치료나 중재 요법, 면역 요법 등이 가능한 병원은 전국에서도 몇 군데 되지 않아요. 그렇기에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최적의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한 치료비의 95%를 지원받는 사람의 암 치료와는 달리 모든 비용을 오롯이 보호자가 부담해야 하는 경제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죠.보험이라도 가입되어 있으면 다행이지만 아직까진 털북숭이의 보험 가입률은 매우 낮고 고령일수록 보험 가입 자체도 힘들어요.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가성비예요. (가성비 : 가격 대비 성능. 여기서는 치료 가격 대비 연장되는 수명의 의미로 쓸게요!) 사람과 비교하여 치료 비용이 많이 들지만, 치료를 통해 얻게 되는 수명 연장의 '절대적인 길이'가 사람에 비해 턱없이 짧아요. 그래서 잠깐의 수명 연장(사람의 수명 기준)을 위해 힘들고 비싼 치료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즉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거예요. (슬프지만 현실이에요.)
거리와 비용을 극복하고 사람 기준의 가성비가 아닌 털북숭이 기준의 가성비를 고려하여 항암 치료를 결정하고 나면 또다시 머릿속에 의문점이 생기죠.
'항암 치료 자체를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지 않을까?'
대개 항암 치료를 받는 환자라고 하면 드라마 속 비운의 여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하게 돼요. 시도 때도 없이 구토하러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며 식욕이 떨어지고 살이 쭉쭉 빠지며 온몸에 털이 다 빠져 버리는... 그래서 이 작고 나이 든 털북숭이에게 고통을 배가시키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게 되죠.
비만 세포종, 림프종(림포마), 방광암, 항문낭 선암종, 유방암, 흑색종 등 다양한 종양에 항암치료를 해 본 경험상 보호자분들이 막연하게 상상했던 삶의 질을 크게 떨어트리는 그런 부작용은 사실 거의 없어요. 물론 항암 처치를 받은 후 며칠은 잠시 기력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치료 효과에 비할바가 못 되죠.
실제로 2017년에 이와 관련된 논문이 나왔는데, 항암치료를 받은 292마리의 강아지들 중 82%인 242마리는 증상이 없거나 가벼운 정도의 부작용을 보였다고 해요. 실제로 심각한 부작용을 겪은 아이들은 3.7%인 11마리뿐이었죠.
항암 치료를 받은 털북숭이의 보호자분들을 대상으로 항암 치료 중에 아이의 일상적인 활동과 삶의 질에 변화가 있었는지도 설문 조사했어요. 그 결과, 76%의 보호자분들이 치료 기간 중 상태가 좋다고 응답했으며 8%만이 치료 기간 중 힘들어했다 답하였죠.
(*Adverse Effects of Chemotherapy in Dogs; World Vet J, 7(3):74-82, September 25, 2017)
항암 치료를 하다 보면 실제로 항암제의 부작용으로 털북숭이가 힘들어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이럴 때 필요한 건 치료를 추천하고 결정한 자신과 수의사에 대한 자책과 원망이 아니에요. 수의사가 할 일은 항암제 용량을 조금 줄이고 부작용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처방하는 것이고, 여러분이 할 일은 아이가 힘든 치료를 이겨낼 수 있게 응원해 주며 주치의에게 지시받은 사항을 빠짐없이 실행하는 것이죠.
그래도 고민된다면 한 두 번의 항암치료만 진행해 보세요. 항암제에 따라 프로그램이 다르지만 일단 한 두 번의 항암 치료 만으로도 아이가 많이 힘들어하는지, 항암제에 반응은 좋은지 등은 바로 알 수 있거든요. 막상 큰 이상 없이 치료를 받으며 털북숭이를 괴롭히는 암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보면 항암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더욱 커질 테니까요!
그러니 고민되는 부분에 대해선 여러분의 주치의에게 터놓고 이야기해 주세요. 그 어떤 면에서의 어려움이라도 함께 머리를 맞대어 고민해 본다면 털북숭이를 위한 또 다른 좋은 방안을 마련할 수 있을 거예요. 파이팅!
p.s.
만약 항암 치료를 통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1년 더 길어진다면 100세를 바라보고 사는 우리에겐 길지 않은 시간일 수 있어요. 하지만 15~20년을 바라보고 사는 그들에겐 가치 있는 긴 시간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