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과 거리가 먼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학창 시절 온갖 기호들에 지레 겁을 먹기 일쑤였죠.
그런 사람도 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고백합니다. 특히 탄소라는 화학기호에 한결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최근 들어 갑자기 친해진 사람처럼 느껴진달까요. 석탄이 되기도, 다이아몬드가 되기도 하는 탄소의 변화무쌍한 변장술에 새삼 감탄을 늘어놓았습니다.
탄소는 가장 수수께끼 같은 원소다. 탄소는 에너지를 포획하고 기억은 저장하는 분자 사슬을 형성한다. 우주에서 오로지 이 원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탄소는 생명의 모든 자취에 활기를 불어넣는 공학자이자 제작자, 분자 행위자다. 탄소는 의식의 모든 측면을 형성하고 가능하게 하며, 살아있는 세계의 모습을 좌우하는 온화한 주재자다.
동시에 마음 한편엔 죄책감이 쌓여만 갔습니다. 부채의식은 책을 덮는 순간까지 이어졌죠. 저 역시 (책의 표현에 따르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태연한 사람이니까요.
탄소는 수십억 년 동안 대기를 드나들었지만, 지난 세기에는 그 속도가 유례없을 만치 빨랐다. 인류는 수천만 년에 걸쳐 화석이 된 탄소를 수백 년 사이에 태움으로써 새로운 지질 시대를 열었다. 지구에 더 최근에 출현한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들이 온실가스 농도 증가의 위험을 알고 있으면서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극단적인 날씨에 시달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면서 침묵의 장막은 서서히 걷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 대다수는 여전히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출근하고, 마당을 쓸고, 농사를 짓고, 카풀을 하고, 공장에 가고, 야채를 사고, 화면을 본다. 사람들이 태연한 걸까, 관심이 없는 걸까?
기후 위기 취재를 할 때에서야 비로소 기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는 우리와 너무나도 달랐고, 뒤꽁무니에서 바라본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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