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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웨Manwe Dec 20. 2023

북극곰 살리기

잔반제로

첫째 아이.

최근부터 철제로 된 식판을 씹어먹을 기세로 열심히 숟가락을 놀려 밥을 먹는다. 누가 봐도 쌀 한 톨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지는 모습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먹으면서 주문 외는 것 같이 꼭 하는 말이 있다.


"북극곰 살릴 거야!"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이야 대체.


"여보 얘가 뭐라는 거야? 북극곰을 살려?"

"어린이집에서 뭘 배워왔나 봐."


대체 무슨 상황인가 궁금해 아이에게 물어보니, 어린이집에서 자연보호 교육인지 식사교육의 일환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에게 잔반을 남기게 되면 북극곰 같은 동물들이 사라진다는 얘기를 해줬다는 것이었다. 멸종이라는 단어도, 환경오염이라는 단어도 모르면서 동물들을 사라져서 못 볼 수도 있다는 얘기에 애써 노력하는 모습에 기특했다.


"이거 진짜 다 먹을 거야?"

"네! 난 북극곰 살릴 거야! 다 먹을 거야."

"그런데 넌 이 반찬 싫어했잖아? 그래도 먹을 거야?"

"... 그래도 먹어서 북극곰 살릴 거야!"

"진짜 진짜 싫으면 꼭 안 먹어도 돼."

"아니야! 먹을 거야!"


단호한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 싫어하는 깍두기도 먹겠다고 하다니. 아이들 대다수가 그렇겠지만 평소에도 동물들 책을 자꾸 보며 관심이 많더니 이런 데서도 관련이 될 수가 있다니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나는 말만 이 콩알만 한 아이들을 위해 자연보호를 해야 한다고 하지 실제 행동은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평소 냉장고 안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곰팡이가 펴 버렸던 음식들이 생각나고, 베란다 분리수거 통에 쌓여있는 배달음식의 플라스틱 용기들이 눈에 밟혔다.


환경보호를 위해 자연에게 해가 되는 모든 행동을 중단하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보일 수 없겠지만, 아이 부모로써 우리가 남기는 잔반 하나도 동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얘기에 싫어하는 것도 참고 먹는 아이 모습을 보며 반성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차근히 노력해야겠다.




"둘째야, 너도 북극곰 살릴 거야?"

"응"

"그러면 다 먹어야지."

"..."


아무래도 아직 둘째는 먼 것 같다.



(사진: UnsplashHans-Jurgen Ma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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