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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웨Manwe Jan 17. 2024

토장염

어머니의 등

퇴근해 집에 도착하니 아내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물어보니 늦은 오후부터 속이 조금 안 좋은 게 아무래도 체한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초저녁 저녁식사를 준비하는데 증세가 점점 심해지며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속이 너무 울렁거린다며 저녁도 먹지 못하고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는데 급체가 와도 단단히 왔다고 생각했다.


"소화제는 언제 먹었어?"

"지난번에 병원에서 받은 게 있어서 그걸로 먹었는데 안 듣네."

"우선 좀 일찍 자도록 해. 애들은 내가 재울게. 자다가 화장실 때문에 깼는데도 속 안 좋으면 이거 약 또 먹고"


식탁에 활명수와 알약을 꺼내놓으며 얘기했다. 그 모습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천천히 침대로 기어들어가는 아내의 모습에 걱정은 되었지만 곧 괜찮아지겠지 하며 애써 넘겼다.


밤 12시

아이들을 재우고 나도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있었는데 갑작스레 내 발을 잡고 툭툭 건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이들이 굴러다니다가 부딪쳤나 하며 눈을 살짝 뜨고 쳐다보았다가 내 발을 잡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된 순간 잠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아내였다.


"어? 어어. 왜?"

"나.. 너무 아파.."

"어디가 아파? 응급실 갈까?"

"응급실 가면 애들은 어떻게 해. 계속 토하고 오한이 오는지 너무 추워."

"그래도 너무 아프면 응급실 가야지. 애들은 자고 있으니까 잠깐 다녀오는 건 괜찮을 거야."


응급실에 가면 좋으련만 애들이 걱정된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아내의 모습에 결국 침대에 눕히고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어때? 여기 아파?"

"아파.."

"혹시 체한 게 아니고 장염인 거 아냐? 잠깐 기다려봐 장염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배에 찜질해 주면 좀 나아질 수도 있대"

"..."

"눈도 감고 있어, 그리고 잠들었다가 또 아파서 깼는데 나 없으면 나 깨우고."


장염에 걸리면 구토를 할 수도 있다는 걸 얼마 전 첫째 아이를 통해 배우게 된 나는 혹시나 싶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좀 안 되는 시간을 주물러주고 찜질해 주었다. 겨우 잠든 아내의 모습에 머리를 한번 쓸어주고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아이들 곁에서 다시 잠을 청했다.


아침이 오고 누워있는 아내의 모습을 뒤로한 채 아이들 등원준비를 시키기 시작했다. 한참 준비를 시키던 그때 첫째 아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빠. 나 배 아파."

"어? 넌 또 왜 배 아파?"

"몰라. 배 아파"

"이리 와봐. 배 문질러줄게."


배를 문질러주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좋지 않은 느낌은 항상 들어맞는다. 구토를 하기 시작한 첫째의 모습에 장염이 옮았나 보다 싶었다. 나는 회사에 급히 전화해 출근을 미뤘고, 아내는 내과로 그리고 첫째 아이는 소아과로 향했다.


"장염은 보통 나타나는 증상으로 판단하는데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장염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결과를 받아 들고 약국을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첫째 아이가 갑자기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무조건 토하기 전이구나 싶어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펴려는데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채 다 펴기도 전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구토로 범벅이 된 아이의 패딩을 닦아보았다. 아이는 울고, 우는 소리를 들으며 구토를 닦다 보니 갑자기 나도 울고 싶어졌다. 아이 감기 같은 게 아닌 좀 많이 아프고 힘들어한다는 사실에 걱정되어 속이 많이 상했기 때문이다.


겨우 뒤처리를 하고 다시 운전해 집을 향하다 어릴 때 다리가 부러졌던 일이 생각났다. 어떻게 하다가 부러졌었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다리가 부러져 부어있는 다리를 어머니에게 보여주었더니 병원에 당장 가자며 집을 나섰었다. 그때 당시 나는 다리가 부러진 탓에 제대로 걷지를 못했는데, 초등학생이라 꽤 무거웠을 텐데도 어머니는 그 무거운 나를 등에 업고 병원까지 갔다. 지금 나는 차에 태워 병원에 다녀오는 것만 해도 힘이 들고 속이 상하는데 어머니는 얼마나 더 힘드셨을까.


오늘도 나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오늘도 아이 덕분에 성장하고 있다.




이후에 안 사실이지만 증세가 도통 나아지질 않아 다른 병원에서 가보니 장염이 아닌 노로바이러스 진단을 받았고, 금세 말끔히 나았다. 생 굴 근처에도 안 갔는데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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