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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진 Jul 02. 2021

이제 생일 바꾸고 싶어


당신의 세상이 저물어간다는 것을 당신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당신의 그 감정을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어떤 단어로도 문장으로도 쓸 수가 없다.


다 큰 것 같아 보여도 당신 눈엔 여전히 어린 두 딸과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며 앞으로 더 많이 여행하자고 약속한 아내를 이 세상에 둔 채, 다른 세상으로 가야만 했던 당신의 마음은 과연 어땠을까.     




연분홍 장미꽃 한 송이를 든 딸이 당신의 병실로 들어온다. 당신이 누워있는 침대, 그리고 그 아래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는 당신의 아내와 두 딸이 보인다.     


 “아빠, 오늘 엄마 생일이야.”     


물 한 모금도 아파 삼키지 못해 사포같이 까끌까끌한 입을 힘겹게 터트리며 당신은 말한다.    

 

 “생일 축하해….”     


흐릿하명확하지 못한 당신의 말을 딸은 너무도 정확하게 들어버렸다. 알아듣지 못한 당신의 아내에게 전해야 하는데, 마지막 생일 축하일지 모르는 당신의  한마디를  전해야만 하는데, 딸의 입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같다.      


두 달 동안 소중히 모아 온 아니라는 모래 한 줌, 모래 한 줌, 모래 한 줌이 작은 파도 한 번에 와르르 쓸려나갈 것 같았기 때문일까. 결국 딸은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떨군다.      




아내의 생일, 그리고 그다음 날의 늦은 새벽.

당신은 안녕히 평안히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당신의 세상이 저물어가는 걸 보면서도 아내의 생일에 죽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까. 그 세상의 끝을 어떤 힘으로 얼마나 힘겹게 붙들고 있던 것일까.    

 

당신의 아내는 돌아오는 생일마다 말한다.

‘생일 바꾸고 싶어, 이○○ 나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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